폐쇄적인 北, 생중계 거부 '몽니'
3대 세습 강조 선전전에만 혈안

이미아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
[취재수첩] '무관중' 남북 축구와 '백마' 탄 김정은

“경기 시작 30분 전인데 관중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외신 기자도 없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예선 사상 첫 방북 원정경기를 치른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대한축구협회(KFA) 측이 전달한 메시지였다. 생중계도, 취재진도, 응원단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전 공지대로였다면 4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어야 할 현장이다. 하지만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은 그렇게 치러졌다. 지금까지 이런 월드컵 예선전은 없었다.

국민은 ‘문자 중계’에 의존해야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와 KFA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상황은 더 열악했다. 경기장 내 기자실에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 감독관이 전달한 내용을 KFA에서 받아 이를 국내 취재진에 다시 보내주는 ‘원시적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평양 주민들에겐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경기 사진과 영상 일부를 올렸다. 남북한 선수끼리 몸싸움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베리스트룀 대사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 안 된다. 오, 그러나 오늘 여기엔 아무도 없다”고 묘사했다.

이번 경기는 1990년 10월 11일 열린 통일 축구대회 후 29년 만에 이뤄진 남북 축구 시합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철저히 숨겼다. 16일 0시께 조선중앙통신에 올라온 119자짜리 단신이 전부였다. 경기 묘사는 ‘치열한 공방전’ 여섯 글자뿐이었다.

영국 BBC의 보도처럼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더비’ 다음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는 보도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했다. 백두산에서 말을 타는 모습은 비단 김정은만 연출한 게 아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골 포즈’였다. 항일 투쟁의 상징이자 ‘위대한 지도자’의 표상으로 소비돼온 이미지다. 우리 국민은 북한의 잇따른 기행에 경악했다. 그렇지만 북한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3대 세습 체제를 지키기 위한 내부 결속용 선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예선전에서 한국에 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다”며 “당장 선수들의 외모와 체격, 유니폼과 운동화부터 다른데 보여주고 싶었겠느냐”고 지적했다. 남북 축구 경기의 촌극과 ‘백마 탄 김정은’은 왜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극장의 나라’”라 불리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