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격차 보여준 '노벨과학상 일본 24 대 한국 0'
100일 맞은 日 수출 규제에 '소·부·장 국산화' 구호뿐
연구 역동성 막는 예산 쪼개주기와 근로규제 개혁해야
요시노 아키라 일본 메이조대 교수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 공로로 2019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요시노 교수의 수상으로 일본은 과학부문(생리의학·물리·화학)에서만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일본 과학기술 저력 앞에서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 세계 1위지만, 노벨상 시즌이 찾아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대조차 갖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집중 연구에 들어간 게 불과 10여 년 전이다. 연구비 나눠먹기가 성행하고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풍토 탓에 과학자가 한 분야에 몰입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기초과학은 ‘제조업 강국 일본’의 뿌리다. 일본은 소재·부품 분야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제조업은 물론 첨단 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산(産) 불화수소가 없으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초정밀 반도체의 가공 공정이 차질을 빚을 정도로 첨단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 영향력은 막강하다. 일본이 2011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중국의 보복(희토류 수출 제한)을 이겨낸 것도 희토류 대체기술을 개발해 낸 덕분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등에서 경험했듯이 이웃 국가와 경쟁국의 견제와 압박을 이겨낼 기술자립이 그 어느 나라보다 절실하다. 오늘(11일)로 100일째를 맞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소재 분야 기술자립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통한 ‘극일(克日)’을 외치고 있지만 정부 대책만으로 ‘기술 자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기업은 많지 않다.

‘소재·부품산업 육성’은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내걸었던 ‘정치 슬로건’이다.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 것은 기초과학의 토대를 튼튼히 세우고 소재·부품 개발을 이끌 기업과 기업인에게 힘을 보태줄 긴 안목의 산업정책이 부재한 탓이다. 일본 수출 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기업이고, 이를 극복해나갈 주체도 기업이다. 기업이 앞장서 뛰고 위기를 헤쳐나가야 정부 대책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갖가지 규제로 경영의 발목을 잡는 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다짐은 실현되기 어렵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주야로 연구에 매진해 학사 출신 연구원이란 핸디캡을 극복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와 같은 ‘연구원 스타’ 탄생을 원천적으로 틀어막고 있다.

산업안전과 화학물질 관리를 이유로 툭하면 공장을 세우고 기업인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는 규제는 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꺾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북돋워 경제 역동성을 살리지 않는다면 ‘진정한 극일’의 길은 오히려 더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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