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을 미끼로 대학들 줄 세워
한인 과학자들, "왜 귀국하나?"
인재는 혁신생태계 보고 이동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안현실 칼럼] '관제(官製) AI대학원' 소동

정송 KAIST 석좌교수는 인공지능(AI) 인력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 ‘AI 플랫폼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인력’, ‘AI 모델과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인력’, ‘AI를 과학으로 다루는 인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인력정책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I 분야 ‘10만 양병론’, ‘100만 양병론’ 등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수요·공급 전망도, 기업이 뭘 원하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도 없다. 창의성 등 인력의 질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 궁금증을 그대로 둔 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AI 우수인재 육성을 위해 ‘AI대학원’을 2019년까지 3개를 신설하고, 2022년까지 3개를 더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은 초과 달성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3개 대학에 2개 대학을 추가하더니 내년에는 3개 대학을 더 만들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상이 바뀌어도 정부의 인력정책 공식은 그대로다. 틀에 박힌 재정지출 방식과 일률적인 통제권 행사, 단기적인 성과 계산법은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관(官)이 주도해 신설한 대학원이 한둘이 아니다. ‘국제대학원’, ‘융합대학원’, ‘기술경영대학원’ 등이 다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글로벌 성공모델로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등록금 동결, 정원 통제, 수도권 규제 등으로 대학이 죽든 말든 더욱 공고해지는 것은 절대적 지배자로 등극한 정부의 권력이다. 시장과 교감하면서 다양하게 진화하는 대학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정부가 예산 지원을 미끼로 내건 ‘관제(官製)’ AI대학원 깃발 아래 줄을 선 대학들의 모습이 처연해 보인다.

연관 분야가 많고 활용 범위를 한정하기 어려운 AI를 하나의 대학원 명칭에 갖다붙이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 따위는 필요없는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대학이 컴퓨터공학과 정원 하나 맘대로 조정할 수 없게 해놓고 AI대학원으로 글로벌 우수인재를 뚝딱 양성하겠다는 관료들의 발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학도 없다.

선진국을 추격할 때 써먹던 인력정책 공식이 언제까지 통할 리 없다. AI대학원을 따낸 대학들은 가르칠 교수를 못 구해 난리다. 급한 대로 기존 교수들을 끌어다 돌려막기를 하고 있지만, 간판이 될 스타급 AI 교수를 유치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미국에서 잘나간다는 한인 AI과학자를 데려오려 해도 급여를 맞춰줄 수 없다는 게 대학들의 하소연이다.

이뿐이 아니다. 최신 흐름에서 멀어지는 것을 좋아할 연구자는 없다. 구글은 인재 유치를 위해 꿈같은 프로젝트를 제시한다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역할을 해줄 곳도 없다. 정부가 국책 프로젝트 우선권을 준다고 해도 연구 자율성 보장, 권한 위임 등은 관료들이 권력을 내려놔야 가능하다. 불행히도 한국 관료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대학에서는 교수, 기업에서는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는 겸직도 한국에서는 여의치 않다. 대학 주변에 겸직을 할 만한 글로벌 AI기업과 연구소도 별로 없다. 빅데이터 등 AI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아 해외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기는커녕 국내 기업조차 밖으로 빠져 나가기 바쁘다. 이대로 가면 AI대학원으로 길러낸 인력마저 해외로 빼앗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인재의 글로벌 이동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름’에 대한 인정·수용 등 관용성이 높은 나라가 좋은 인재를 쓸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혁신을 이끄는 창조계급의 이동과 집중에 따라 부(富)가 달라진다고 한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가 주목한 것도 관용성이다. 혁신생태계를 번창하게 하는 최고의 인력정책인 관용 문화와 획일적인 규제는 상극이다. 정부가 인력정책을 대학과 기업에 넘겨주는 것은 어떤가?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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