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세계의 '한국전 기념탑' 다시 지어주자
지난 5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콜롬비아를 공식 방문해 ‘한국전 참전 기념탑’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는 기사와 사진을 봤다. 콜롬비아에 석가탑 모형으로 건립된 한국전 참전 기념탑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 기념탑은 모양이 아주 이상하고 만듦새도 수준 이하다. 뾰족하게 올라간 이 6층탑은 조형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약하고 전몰장병을 추도하기엔 무미건조한 정체불명의 기념비였다. 석가탑을 모방했다고 하지만 석가탑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고대 인도에서 무덤을 ‘스투파’라고 했다. 이를 ‘탑파’로 부르다가 줄여서 ‘탑’이라 부르고 있다. 불사의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고 예배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업적을 기리려고 세우는 기념물인 비(碑)가 아니다. 이런 기념비를 영어로는 ‘모뉴먼트(monument)’라 하고, 전쟁 기념비는 ‘워 메모리얼(war memorial)’이라고 한다. 그러니 불사의 탑 모양으로 참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이 탑의 전면에 ‘대한민국 국민이 콜롬비아군에게 드림’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총리도 불사의 탑을 본뜬 이 기념탑 앞에서 “한국의 평화와 번영에는 콜롬비아 청년들의 희생이 있었으며, 이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난 7월 박원순 서울시장도 격에 맞지 않는 이 탑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며칠 전 필자는 터키 괴베클리 테페와 샨르우르파를 지나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 등을 답사했다.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터키의 고대문명이 진정한 원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을 찾아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터키군인들에게 묵념했다. 터키는 이 전쟁에 2만1212명이 참전했고, 그중 892명이 전사한 ‘형제의 나라’다. 그런 나라에 콜롬비아의 것과 거의 비슷한 ‘한국전 참전 기념탑’이 있었다.

이 기념탑은 앙카라에서도 중심지인 앙카라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한국공원’ 안에 있다. 위치가 도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이 공원은 앙카라와 자매결연한 서울시가 1973년 조성했다는데, 이상하게도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 기념탑도 같은 해에 같은 사람이 설계했다고 한다.

먼 곳에서도 잘 보이는 이 기념탑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저 높이 우뚝 서 있기만 하다. 이 ‘허구’의 4층탑이 왜 고귀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참 어설픈 기념탑을 보고 있으니 건축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또 불국사의 석가탑을 모방해서 지었다고 설명한다. 기단이어야 할 제일 밑 부분은 네 모퉁이에 기둥만 서 있다. 그 빈 공간 사이에 그저 평범한 추모단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위로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석조 구조물인 양 대리석을 붙여놓아 탑 전체가 마치 레고 블록을 쌓은 것처럼 보였다. 탑이란 돌을 쌓아 올린 것이지 붙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앙카라의 한국공원은 넓이가 1만여㎡지만 그리 넓지 않다. 이런 규모에서는 미국 워싱턴DC의 ‘베트남 전사자 위령비’처럼 땅의 형상을 따라 조경을 풍성하게 하고, 낮지만 힘 있는 조형물로 대지 전체를 집중하게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곳에 높기만 한 허약한 불탑 형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한가운데 우뚝 세우니, 적절한 스케일의 공간감이 전혀 없이 주변 조경을 압도하고 있다. 배치도 조경도 모두 어설프게 경직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4월 이 기념탑 앞에서 헌화하며 50여 명의 참전용사에게 이렇게 연설했다. “여러분은 위기에 내몰린 한국만을 구한 것이 아니다. 당시 한반도의 안정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도 직결돼 있었다.” 그러나 이 기념탑과 조경은 목숨을 바친 희생자를 기리자는 대통령의 말과 같은 울림을 전해주지 않는다.

‘한국전 참전 기념탑’은 그야말로 우리를 위해 피 흘린 이국의 영령들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정성을 다한 기념탑을 지어 이들에게 다시 바칠 필요가 있다. 2023년, 4년 뒤면 이 한국공원이 세워진 지 꼭 50주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