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근로시간 단축, 장기침체 도화선 된다
일기예보와 경기예측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래 기상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후가 워낙 변화무쌍하다 보니 여전히 예보가 빗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천(雨天)의 예보가 틀린 경우보다 그 반대로 청천(靑天)이 벽력(霹靂)으로 빗나갈 때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비 예보를 더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낮은 확률이라도 우산을 준비하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인 것은 확실하다.

경기예측에서도 비슷한 가설이 적용될 수 있다. 즉, 경기호황을 예측하는 경우보다 침체를 우려하는 경고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다가올 침체에 미리 대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는 기후변화와 달리 정책이나 투자와 소비활동 등 인위적인 노력에 따라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통화금융정책이나 정부의 재정투자, 국제 간 교역 확대 등 전략적 선택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장 미·중 간 무역분쟁만 타결돼도 경제 회복에 큰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예측은 침체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대통령은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경제부총리는 “한 치 앞도 안 보인다”고 한다. 국회에선 “누가 대통령 원고를 써줬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고 한다. 특히 내년에는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교역의 성장률도 10년 만에 최저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대외환경 악화는 기후변화처럼 불가항력이라고 하더라도, 학계에서는 정부 정책이 경기 회복은커녕 오히려 침체를 더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근로시간의 단축 정책을 살펴보자. 산출량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과 각각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 투자에 큰 변동이 없다면, 생산량은 노동시간(A)과 생산성(B)을 곱해서 결정된다. 노동의 생산성은 근로자의 기술이나 전문성, 교육, 자본 장비량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단기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생산성(B)은 일정한데 노동시간(A)을 줄이면, 전체 산출량(A×B)은 당연히 줄어든다. 여기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고용(A) 감축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감소폭은 더 커진다. 생산량이 줄어드니 경제는 침체되고, 성장률은 떨어진다. 근로시간을 줄였다고 당장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경제침체는 당연한 결과다. 복잡한 경제이론을 동원하지 않아도 초등 산수만으로도 증명 가능하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된 것은 엔화 절상이 직접적인 원인이라지만, 장기 침체를 유발한 것은 오히려 1988년 노동법 개정으로 인한 근로시간 단축이었다는 에드워드 프레스콧과 하야시 후미오 교수의 연구 결과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종전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자본투자를 확충하고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노동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과 훈련 등이 병행돼야만 한다. 그러나 경직된 규제가 계속되고 기업의 투자환경도 열악하다보니 당장은 자본 투입량은 물론 생산성 증가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살린다지만 그것도 생산 기반의 확충보다는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시혜적 복지 지출이 대부분이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생산기반 취약에 총수요 부족까지 겹쳐 물가상승률마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직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이대로 가면 자칫 일본형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경제 논리를 거슬러 가는 정책으로는 침체의 덫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형평의 개선과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전문성을 외면하고 이념에만 매달리는 정책으로는 결국 분배도 악화되고 삶의 터전인 일자리도 지키기 어렵다. 게다가 경제보다도 오히려 장관 하나 지키는 데 더 심혈을 기울이는 정치문화에서 어떻게 빠른 회복을 기대하겠는가. 그 사이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경제는 아무도 챙기지 않으니 이 땅을 떠나는 사람만 늘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침체예보를 무색하게 만들 정책의 대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