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고 있다. 글로벌 호황을 이끌며 잘나가기만 할 것 같았던 미국 경제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은 물론 독일 영국 일본 경제마저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지난달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 이어 일자리 지표도 둔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최근 3개월(7~9월)간 늘어난 일자리 수는 평균 14만5000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21만4000개)보다 32% 줄었다.

독일 일본 중국 등의 제조업 경기도 위축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 제조업 경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악 수준이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교역이 줄면서 글로벌 공급 사슬이 붕괴돼 그 여파가 주요국들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가 올해 세계 무역 증가율 전망치를 지난 4월(2.6%)의 절반 이하인 1.2%로 낮춘 것도 그래서다.

그 와중에 미국은 유럽연합(EU)의 항공기 농산물 등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EU도 맞대응을 예고해 교역 감소는 더 심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핵 문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폭에 따른 유가 변동성 확대 등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글로벌 경제가 계속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대규모 경제 혼란(disruption)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중국 유로존 등 16개국이 3분기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영국 프랑스가 일제히 법인세 인하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온통 ‘조국 사태’에 매몰돼 경제 문제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수출이 10개월 연속 줄어들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지만 위기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일 경제 갈등조차 이젠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교역 감소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에 직격탄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추가경정예산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떠들더니 국회 통과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추경 예산 집행률은 30%에 그치고 있다. 각종 정책은 ‘경제 살리기’보다는 내년 총선에 맞춰 속도와 방향이 조절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보다 경제 여건이 양호한 나라들조차 비 올 때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정작 이미 비를 맞고 있는 우리만 호우예보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