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황혼이혼 유감
황혼은 편안함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역설의 시간’이다. 체력은 떨어지지만 지혜는 커지는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찾아와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짧은 식견으로는 세상 이치를 분별할 수 없으며, 황혼녘에서야 지혜와 올바름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의 황혼은 지혜로 삶을 관조하기보다 아쉬움에 몸부림치는 힘겨운 시간일 때가 적지 않다.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엊그제 통계청의 발표도 ‘방황하는 황혼’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해 ‘만 65세 이상’ 여성과 남성의 이혼 건수가 1년 전보다 각각 21.0%, 16.7%나 늘었다. 건강한 사회의 기본 단위가 ‘행복한 가족’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희로애락과 추억이 깃든 과거를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황혼이혼은 비극적인 일이다. 황혼 이혼자의 절반 가까이가 ‘성격 차이’를 사유로 꼽는다. 긴 시간 가슴 한편에 쌓은 분노와 반목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우리 사회 고질병인 ‘불통(不通)’의 누적이 가정으로까지 번진 듯해 안타깝다.

번거로운 재산분할, 자식과 주변의 마뜩잖은 시선을 감수한 선택을 비난만 하기도 어렵다. 올해 100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60~75세’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다. 100세 노철학자는 “60세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미숙했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65세 젊은이’들에게 “정신은 70~80세를 넘어 평생 성장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건강 수명’이 훨씬 길어진 데다 일하는 노인이 많아진 점을 감안하면 황혼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유엔은 18~65세를 청년(youth), 66~79세를 중년(middle-aged)으로 분류하는 새 기준을 2015년에 제시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80세 이상’이 노년이다.

인생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게 되는 등산과 비슷하다. 황혼 이혼을 꼭 부정적으로 볼 수만도 없지만, 지나온 세월에 대한 자기부정임은 분명하다. 하산의 안도감과 즐거움 역시 손잡고 고생하며 등반한 동반자와 함께할 때 더 커지는 법이다. 황혼 이혼 결단에 앞서 솔직한 대화와 공감으로 ‘다름’을 용해해내려는 태도가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볼 일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