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간 무역마찰, 보호주의 등
韓 경제 둘러싼 대외 여건 심각

정책불확실성에 디플레 우려까지
대형위기 잠복요인 많아 '불안'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韓, 1년 내 대형위기 발생한다"…이번엔 맞을까

“앞으로 1년 안에 한국 경제에서 대형 위기가 발생한다.” 한 월간지가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대형 위기란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1990년대 후반 발생한 외환위기 같은 것을 말한다. 어렵게 도달한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가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때에 대형 위기가 발생한다면 ‘중진국 함정’ 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위기는 글로벌화가 급진전됐던 1990년대 이후 주로 발생했다. 그 이전까지 위기는 특정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과도한 외채, 부채 만기 불일치, 자본 자유화에 따른 부작용, 고정환율제 등 내부 요인에 기인한다고 봤다. 신흥국 위기를 설명할 때 널리 알려진 ‘자산 거품 붕괴 모형’이 대표적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韓, 1년 내 대형위기 발생한다"…이번엔 맞을까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각국의 빗장이 빠르게 열리면서 내부 요인보다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 자본 수출국의 통화정책 변경, 각국 자본시장 간 통합 정도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위기가 발생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위기 성격도 채무·부동산·실물경기 위기 등이 겹치면서 다중 복합적인 성격이 짙어졌다.

경제역학 구도상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위기가 발생한 경우도 많아졌다. 내부적으로 경제 기초 여건이 양호하더라도 최고통수권자, 집권당, 경제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 흐름이 역전되면서 대형 위기가 발생했다.

이번 조사에서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외환위기 전후 상황을 보면 1994년 이후 독일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 출범 전 유럽 통화정책 주도)는 기준금리를 연 5%에서 연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연 3.75%에서 연 4.25%로 인상한 뒤 1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연 6%까지 끌어올렸다. ‘대발산(great divergence)’ 시기다.

미국 경제는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경기도 슈퍼 달러 등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 붕괴를 계기로 침체 국면에 들어갔다.

또 하나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리먼 사태 진전 과정을 보면, 2000년대 들어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2004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연 1%까지 내렸다. 그 후 기준금리를 올렸으나 시장금리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자산 거품이 심하게 발생했다. 당시 자산 거품 붕괴를 촉진시킨 것이 유가였다. 2008년 초 배럴당 70달러대였던 유가가 6개월 새 140달러대로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차단돼 자산 가격이 급락하자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에 봉착한 투자은행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중 간 마찰, 각국의 보호주의, 환율 전쟁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심상치 않다. 세계 경기 장기 호황도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경제 외적으로 극우주의 세력도 갈수록 힘을 얻어 가는 추세다. 사디크 칸 영국 런던 시장은 지금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직전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대내적으로는 모든 국정 현안을 놓고 이분법적 대립으로 혼탁하다. 실물경기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악화일로다. 위험 수위를 넘은 가계 부채, 날로 증가하는 국가 채무, 저출산·고령화,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는 남북한 관계, 중국 편향적인 경제구조 등 위기 잠복 요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다행히 지난 7월부터 Fed가 금리를 내리면서 대발산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등으로 볼 때 아직까지 대형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하지만 외국인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앞으로 1년 동안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