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30년 겉돈 이유 모르나
일본보다 우리 내부가 더 문제
죽어가는 대학·연구소 살려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안현실 칼럼] 과학 짓누르는 전체주의 유령

이탈리아가 국립과학재단을 설립한 때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1923년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보다 27년이나 빨랐다. 과학의 진보가 국가 경제의 진보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다지만, 방법은 전혀 달랐다. 빠른 경제적 성과를 위한 과학자 총동원령이었다.

“한 세대 뒤 후배 공직자들이 또다시 대책 마련을 위해 밤샘하지 않도록 확실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확실하고 가시적인 성과’ 압박은 한 세대 전에도 있었다.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소재·부품·장비를 언급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는 물론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섰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을 전면 개편하고 예산도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 이런 정부가 불안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기대한 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책임을 묻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과학자 출신 공직자들이 한술 더 뜨는 모습에 이르면 더욱 난감해진다.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번에야말로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인이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이 걸렸다”고도 했다. 반도체 전문가라는 과기정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소재·부품·장비산업 정책 실패가 졸지에 과학기술, 과학기술자 탓이 되고 말았다. 과학기술자 집단에 단체 기합이라도 주면 금방 혁신이 일어날 것이란 확신은 어디서 오는지, 전체주의 유령이 되살아난 게 아닌가 싶다.

한 나라의 연구개발(R&D) 정책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별하는 간단한 잣대가 있다.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어디선가 관련 연구를 하고 있거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과 조직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면 연구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닥쳤을 때 한국은 어땠는가?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들이 잇따라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대학과 정부연구소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혁신시스템이 고장난 지 오래란 얘기다.

반도체업계의 한 기업인은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1 대 3으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기업·대학·연구소 클러스터와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떨어지면 정부가 돈을 퍼부어도 선진국형 산·학·연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죽어가는 대학·연구소에 지금이라도 자율성·독립성을 주자는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전혀 없다. 오로지 ‘국가가 깃발을 치켜들었으니 과학자는 집결하라’는 동원령을 방불케하는 발언만 쏟아지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도 ‘그림의 떡’이다. R&D 권력을 쥔 관료들이 확실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면 안전하고 성공확률이 높은 R&D가 우선시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래의 소재·부품·장비를 위해 도전해야 하는, 위험하고 실패확률이 높은 R&D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플랫폼·아키텍처 혁신이 일어나 소재·부품·장비 경쟁의 판이 바뀔 가능성에 대비하기도 어렵다.

혁신 주체인 기업이 대학·연구소와 그물망처럼 얽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선진국형 혁신시스템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자율적인 연구활동은 기본이다. 과학자가 궁금해서, 하고 싶어서 한 연구가 기업가를 만나 혁신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기업·대학·연구소를 줄 세우느라 바쁘다. 정부 관심이 사라지면 연구는 죽는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앞 정권 연구는 적폐로 몰린다. 문제가 터지면 과학자 책임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이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한 세대가 더 흐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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