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은 '국가균형발전의 평형수'다
안팎으로 처한 경제 여건이 매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 주력 제조업의 침체, 경제성장률 하락, 통상마찰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선도 그룹이 되려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기술 트렌드 변화와 보호무역주의에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큰 배일수록 풍랑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배의 육중한 외양이 아니다. 평형수가 잡아주는 균형에 있다. 주요 자원이 몰려 있는 서울과 수도권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 경제의 고른 육성과 발전이 평형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號)’의 안정적 항해는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다. 그동안 지역별 특화 산업, 신산업 육성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가의 고른 발전을 위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중요한 국정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인구와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여전하다. 인구 감소까지 겹쳐 상당수 지역이 ‘지방 소멸’의 위협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제로섬 게임’을 넘어야 한다. 지역에도 혁신성장의 거점이 될 만한 공간을 육성하는 게 첫걸음이다. 시·도 단위 균형발전 정책에서 나아가 시와 도를 묶어 초광역화하는 한편 한정된 공간에 에너지를 집중해 기업과 인재 유입의 선순환을 끌어낼 정도의 규모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산업단지가 큰 역할을 해왔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단지 외에도 경제자유구역, 연구개발특구, 투자선도지구 등 다양한 기능을 묶어 혁신 자원을 결집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산업 클러스터인 중국 선전, 바이오 클러스터로 명성이 높은 스웨덴 웁살라,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는 프랑스 툴루즈 등은 연구와 생산, 비즈니스와 생활이 가능한 혁신 거점들이다. 특히 혁신도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신도시는 인근에 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 연구개발특구 등 좋은 생산 여건을 갖추고 있다. 주변 자원을 한데 묶고 시너지를 꾀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정부는 혁신도시를 지역 혁신성장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다. 국가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산·학·연 네트워크와 개방형 혁신에 필요한 공간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지역 특성을 살려 신산업 육성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시스템 개발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갖춘 산업군을 육성하고 있다. 세금, 보조금, 금융 지원, 기업 및 공공기관과의 연계도 패키지로 지원해 혁신 클러스터로 탈바꿈할 기반을 닦고 있다.

대규모 클러스터를 만들어 다양한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법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접근법이다. 지역 사업과 정책, 규제와 세제, 금융 등을 지역 관점에서 한데 모아 투자 전략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역을 잘게 나눠 첨단산업 일변도의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여건과 역량을 고려한 국가발전, 지역별 특색을 살린 균형 잡힌 지역경제의 육성이 대한민국호의 묵직한 평형수가 될 수 있다.

27일까지 전남 순천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는 지역별 혁신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공유하는 행사다. 균형발전박람회가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을 논의하는 장인 동시에 대한민국호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항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