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불황을 이기는 경영비결
작은 공장 100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울 문래동. 이곳에 대원특수코리아가 있다. 필터하우징을 생산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독특하다. 수주 업종인데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예 영업조직이 없다. 그런데도 일감이 5개월치나 밀려 있다.

경기 침체로 문을 닫는 업체도 있는데 이 회사는 어떻게 일감이 넘치는 것일까. 반도체 화학 음료 등 제조업에서 중요한 공정 중 하나가 기체와 액체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일이다. 이 역할을 하는 게 필터고 이를 담는 용기가 필터하우징이다. 대형 필터하우징은 뚜껑 무게만 100㎏이 넘는다. 이를 볼트와 너트로 풀고 죄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두세 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이 회사는 혼자서 핸들을 돌려 전기밥솥 뚜껑처럼 가볍게 여닫는 장치를 개발했다. ‘크램프 타입 필터하우징’이다. 이 회사의 박대석 대표는 “서너 시간 걸리던 대형 필터하우징 개폐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였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디어 덕분에 주문이 몰린다.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무기

경기가 좋지 않다. “외환위기 때만큼 힘들다”는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이를 이겨나가는 기업이 있다. 인천의 헬리녹스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의 의자들이 지난 7월 루브르박물관 앞뜰을 뒤덮었다. 유리 피라미드 설치 30주년 기념행사에 의자 1000개를 설치한 것이다.

이 회사는 ‘초경량의자’라는 아이디어로 아웃도어용품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에 설치한 의자는 무게가 990g에 불과하지만 145㎏의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거구의 씨름선수가 앉아도 끄떡없다. 디자인도 뛰어나 유럽 일본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는 불황을 뚫는 무기다. 해외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1일부터 사흘간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원 및 레저용품 전시회 ‘스포가가파2019’에서 아이디어 제품이 다수 선보였다. 2m 높이의 수직벽에 작은 화분 80개를 걸 수 있는 화분걸이도 그중 하나다. 도심 속 좁은 공간을 수직정원으로 꾸밀 수 있는 제품이다. 전력 없이 온실효과를 이용해 더운물이 나오게 설계된 솔라샤워도 눈길을 끌었다. 중소기업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이어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게 이번 전시회다.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

하지만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질긴 도전정신이다. 박 대표가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한 것은 수없는 실패가 밑거름이 됐다. 청년시절 시골에서 상경한 박 대표가 처음 배운 일은 용접이었다. 밀링과 선반작업도 틈틈이 익혔다. 현장 경력이 수십 년에 이르는데도 신제품 필터하우징을 개발하는 데 백 번이 넘는 실패를 경험했다. 시간도 15년이나 걸렸다.

헬리녹스가 초경량의자를 선보인 것은 모기업인 동아알루미늄의 수년간에 걸친 소재 개발 노력 덕분이다. 이 회사는 초경량 텐트 폴대를 제작하기 위해 신소재 개발에 승부를 걸었고 3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이를 개발했다. 이 소재가 초경량의자를 탄생시킨 밑거름이 됐다.

요즘 경영 환경이 어렵다며 사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기업인이 많다. 수십 년 사업을 해온 기업인은 누구나 그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했을 것이다. 여기에 아이디어를 입히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끈질기게 도전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이게 성공한 기업인들이 주는 일관된 메시지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도전정신을 불사를 때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