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9·19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오늘로 1년이 됐다. “한반도를 핵무기·핵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던 남북 정상의 합의는 1년이 지난 지금 말잔치에 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평양 시민을 상대로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역설했던 당시의 기대와 감동은 사라졌다. 안보상황이 악화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남북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9·19 군사합의를 통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는 물론 철도·도로 구축 등 남북경제협력 관련 내용에 합의했다.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까지 열었지만 지난해 12월 체육분과 회담을 마지막으로 남북 대화가 중단됐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복구와 화상 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은 아예 열지도 못하고 있다.

군사합의가 최대 성과로 평가됐지만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 등 시늉만 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5월 이후 열 차례나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등 단거리 발사체 도발을 이어가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적대행위 전면중지’를 규정한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망발’이라 비난하고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웃을) 노릇”이라고 막말과 조롱을 퍼붓기까지 했다. 대화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응징은커녕 제대로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9·19 합의 위반이 아니다”며 북한을 두둔하기 바빴다. 북한이 신형 방사포 등 신무기를 개발하는 사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폐지로 우리의 안보 태세는 약화되고 있다. 삼척항 목선 귀순사건 당시 경계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군의 기강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 지연의 책임이 남북 양쪽에 있다고 하고, 국가보훈처는 북한의 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게 ‘전상(戰傷)’이 아니라 ‘공상(公傷)’ 판정을 내리는 등 북한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진전되지 않고 있다. 최근 협상 재개 움직임이 있지만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대화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미·북 대화의 큰 틀 속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기대하지만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북한 도발에 중국 러시아까지 한반도의 잠재적 위협으로 떠올랐다. 이럴 때일수록 동맹과의 공조가 중요한데 청와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한·미 동맹마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훼손되면 안보 상황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북한의 도발로 군사합의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우리만 경계태세를 낮춰서는 곤란하다. 약속을 깬 북한에 제대로 따져야 한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 안보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