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논점과 관점] 혁신성장, 열거주의부터 버려라
SK텔레콤이 지상파방송 3사와 손잡고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를 내놨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외국 OTT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디즈니, 애플까지 뛰어들자 서비스를 합쳐 대응에 나섰다. SK텔레콤은 넷플릭스, 유튜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

카카오모빌리티가 국내 최대 택시가맹사업자인 타고솔루션즈 지분 100%를 확보했다. 타고는 승차거부 없는 ‘웨이고 블루’ 택시를 운영하는 업체로, 서울 지역 50개 법인택시 회사가 참여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호출 플랫폼을 뛰어넘어 종합 택시회사로 변신했다. 카카오는 애초부터 택시회사가 되고 싶었을까.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기존 산업과 신(新)산업이 교차하는 4차 산업혁명 대전환기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잇따른다. 신기술 세력은 기득권을 흔들고, 기득권 세력은 방어하기 바쁘다. 데이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 국경은 의미가 없다. 기존 게임의 법칙은 힘을 잃고, 새로운 제도와 질서에 대한 요구는 높아진다. 그러나 기존 법과 규제는 기득권 세력의 공고한 방패 역할을 한다.

정부가 내놓은 승차공유 해법만 봐도 ‘배가 산으로 간’ 격이다. 카풀, 타다 등을 둘러싸고 택시업계가 극렬히 반대하자 ‘공유’는 사라지고 택시 서비스만 업그레이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정부와 국회는 OTT를 방송법에 포함시켜 규제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영향력을 키운 건 법이 미치지 않는 외국 OTT인데, 애꿎은 국내 OTT만 규제를 받게 생겼다.

문제는 앞으로 등장할 신사업과 서비스가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허용된 승차공유와 원격진료 등이 국내에서 꽉 막혀 있는 것은 기득권 반발 외에도 강력한 법적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 규제는 기존 산업에 맞게 설계됐다. 환경이 바뀌었다면 규제도 새로운 틀과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도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규제 개혁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낮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6개월 만에 81건의 과제를 승인했지만 변죽만 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유경제, 원격의료, 빅데이터 활용 등 핵심 분야는 손도 안 댔기 때문이다.

낡은 잣대로 미래 옥좨선 안돼

중요한 것은 규제의 근본 틀을 손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포지티브(열거주의) 규제’를 ‘네거티브(포괄주의)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열거주의는 법에 나열된 것만 허용하는 방식이다. 결국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이런 시스템은 민간의 창의성을 크게 저해해 기술 및 산업 발전을 위협한다. 할 수 없는 것만 법에 명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의원의 ‘법률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 입법은 규제영향평가 등을 받지 않는다. 관계부처와 산업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불량 규제’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 물론 네거티브 방식에서도 예외적 금지조항이 상품과 서비스의 본질적 기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의 해묵은 사고 틀 속에 신산업이 갇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 혁신적인 기술과 상품, 서비스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기업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하다. 낡은 법과 제도로 미래를 규제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