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核·안보 불확실성 키운 '볼턴 경질'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물러났다. 미국의 정통 보수주의 원칙론자인 볼턴과 워싱턴의 관료와 기득권 세력을 불신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잘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볼턴은 이란 핵문제, 아프가니스탄 철군,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러시아의 선거 개입, 북한 비핵화 등 굵직한 사안마다 트럼프와 이견을 보였다. 9·11 테러 추모일을 앞두고 아프간 철군 협상 명목으로 탈레반을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초청하는 데 볼턴이 반대한 것이 사퇴의 도화선이 됐다.

볼턴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린다. 백악관의 정책 협의과정을 무시하고 의사결정을 독점했고, 트럼프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였으며, 이란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임을 불러온 시리아 철군 결정을 번복시키고, 트럼프가 탈레반과 타협해서 아프간 철군을 서두르려는 것을 막았으며, 북한의 핵 포기가 담보되지 않은 ‘하노이 딜’을 무산시킨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볼턴의 사임은 한국에 큰 손실이다.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 볼턴만큼 북한 정권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사람도 없다. 볼턴이 취임 초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주장한 것은 북핵 문제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턴과 비교할 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안보 문제 식견도 크게 떨어진다. 북한으로서는 앓던 송곳니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고 쾌재를 부를 일이다.

볼턴의 경질로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이 훨씬 커졌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존 켈리 비서실장, 댄 코드 국가정보국장에 이어 볼턴이 퇴임함으로써 트럼프의 변덕과 만용을 제어하던 마지막 안전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임기 초에 관료와 군의 조언을 듣고 조심하던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익숙해지자 충언하는 참모들을 내치고 거침없이 활보하고 있다. 볼턴의 후임이 누가 되든 행정부 안에서 트럼프를 견제할 사람은 없다.

지금 트럼프의 관심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초유의 이벤트를 벌이는 데 있다. ‘거래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띄우는 것이 내년 재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갑작스런 판문점 회동,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회담 추진, 캠프 데이비드로 탈레반을 초청한 것 등이 그 사례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벤트에 치중하다 부실한 합의를 하는 경우 우리의 안보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일부 핵탄두를 폐기하는 대신 단거리,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제재를 완화하는 절충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되고 북핵 폐기는 불가능해진다. 최근 북한의 집중적인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단거리 핵능력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각인시키는 전술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본토를 위협할 능력을 없애는 대신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는 핵능력은 묵인해달라는 것이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연합훈련을 ‘전쟁게임’으로 비하하며 일방적으로 중단한 트럼프가 한·미 동맹을 어떻게 훼손할지 알 수 없다.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며 북한과 어설픈 타협을 하지 않을까 많은 국민이 불안해한다. 그가 갑자기 표변해서 북한에 군사공격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한반도의 안보가 큰 혼란을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

트럼프 임기 중에 초래된 한·미 동맹의 간극을 메우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라의 안보상황이 불안할수록 국민 모두가 중심을 잡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