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WTO 개도국 졸업, 피해 발생 가능성 줄여야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부처 간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 표명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농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산업 단체는 한국이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잃으면 수입관세가 대폭 낮아지고 농업보조금도 축소되기 때문에 농업에 미치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며 농업주권과 통상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먼저,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농업부문에 피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피해는 WTO 농업협상에서 관세와 보조금을 얼마나 줄일지 합의하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WTO 농업협상은 지난 18년간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교착상태에 빠져 진전이 없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O 탈퇴’를 거론하고 있어 앞으로 농업협상이 잘 진전될지 아니면 이대로 실패로 끝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때 확보한 개도국 지위는 계속 유지된다. 피해는 앞으로 WTO 협상이 타결돼 이행되는 시점에 가서야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장래에도 농업 부문에 피해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WTO 농업협상 결과를 이행하는 시점에 한국 농업에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볼 수 있다. 특히 쌀과 같이 한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예외를 인정받아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품목은 개도국 지위 포기 이후 관세를 대폭 낮춰야 해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요약하면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미래 어느 시점에 농업이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며, 농업인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개도국 지위는 미국의 통상압력이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국을 개도국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만이나 싱가포르도 향후 협상에서 더 이상 개도국 지위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며, 중국마저 경제발전에 상응한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해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제시한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따른 피해가 당장은 발생하지 않으며, 실질적 비용도 작다는 점을 농업계에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동시에 미래에 발생 가능한 피해에 대한 농업인의 우려를 이해하고, 이를 충분히 해소해 줄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차기 협상이 진행될 경우 쌀과 같은 고율 관세 농산물에 대한 예외 확보 등 방안을 통해 쌀 농가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허용보조(WTO 농업협정상 무역 및 생산왜곡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것으로 간주돼 감축의무로부터 면제되는 보조금) 중심의 선진형 농정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불편한 농심을 달래려면 그에 상응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