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10년 내 선진경제권 도약 못하면 '중진국 함정' 제대로 빠진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960~1962년 평균 84달러에서 2016~2018년 평균 2만9568달러로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선진국의 25~75%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소득수준 차이는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정책은 현재의 소득수준에 만족해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소득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정책의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경제 발전 중장기 목표를 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와 수단을 제시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를 보여줘야 한다.

경제정책은 청사진 유무에 따라 성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청사진이 있으면 정부의 모든 정책 담당자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고, 모든 민간 경제주체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호응한다.

정부는 경제정책의 청사진으로 1962~1981년에 경제발전 5개년 계획, 1982~1992년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1993~1997년 신경제 5개년 계획, 1998~2002년 대중경제론, 2003~2007년 참여정부론, 2008~2012년 녹색경제론 그리고 2013~2016년에는 창조경제 3개년 계획 등을 제시했다. 이를 모두 정확하게 경제정책 청사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경제정책이 지향하는 바와 기본적인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경제정책의 핵심 기조로 제시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증가시켜 경제 전체의 소비 지출을 늘리고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제도는 근로자의 기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임금 지급을 사용자에게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따라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업체는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폐업돼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뉴스의 맥] 10년 내 선진경제권 도약 못하면 '중진국 함정' 제대로 빠진다
경제정책 청사진을 갖고 있나

하지만 최근의 최저임금 책정이 이런 개념하에 시행된 것인지 의문스러운 측면이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시급 8350원)은 1인당 GNI가 두 배 이상 높은 미국의 연방정부 제시안(시간당 7.25달러·8640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취지와 달리 기본 인권 보호 수준을 뛰어넘어 사업체들에 지나치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얘기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마찬가지다. 근로자의 기본 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근로시간을 과도하게 줄이고 탄력근로제를 강화하다 보면 오히려 근무시간이 지나치게 늘어나 도입 취지를 흐릴 수 있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제대로 된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그밖에 정부는 일자리 창출, 복지지출 확충,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脫)원전 등 여러 가지 시책을 펴고 있지만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명시적으로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우선 과제는 '선진 경제 도약'

필자는 정부가 경제정책 청사진에서 제시해야 할 경제정책의 기본 목표가 ‘선진 경제로의 도약’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선진 경제권으로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 있다. 중진국 함정은 중진 경제권에 진입한 이후 이에 만족해 발전 노력을 게을리함으로써 중진 경제권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후진 경제권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많은 전문가가 한 나라의 경제가 중진 경제권으로 진입한 뒤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선진 경제권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경우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진국 함정론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매몰되지 않고 선진 경제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는 ‘한국 경제의 선진 경제 도약’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최근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10년 이내에 선진 경제권으로 도약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는 ‘성장동력의 상실’이라는 체질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1990년대 말까지 고도성장은 국민의 근면성이 저임금을 기초로 한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임금 수준이 올라가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기술과 이를 위한 창의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요구됐다.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 이런 창의력은 정보력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리고 정보력과 창의력은 많은 경제주체 간 협력에 의해 가능해진다. 정보력과 창의력, 협력을 합친 ‘지식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지식력이 강한 경제 체질로 바뀌려면 근본적으로는 교육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기본생활 보장'

지식력의 강화는 선진국의 조건 중 하나인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다 풍요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경제적, 사회적 격차에 정책적으로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에 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지속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경제정책은 인간적인 삶에 대한 보장을 지식력 강화와 더불어 경제정책의 중요한 기본과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특정 시점까지 일정 수준의 기본생활을 어떤 수단을 통해 확보해줄 것인지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기본생활의 보장을 위한 정책이 기업의 생산과 분배 과정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 경영이 왜곡돼 생산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경제 성장이 어려워져 결국 기본생활의 보장도 불가능해진다.

기본생활 보장은 기업에서 생산과 분배가 이뤄진 뒤 조세정책 등에 의한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선진화 10개년 계획 세워야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경제정책 청사진은 경제 체질의 혁신과 기본생활 보장 외에도 경제안정의 추구, 산업구조의 혁신, 금융구조의 혁신, 기업지배구조의 합리화, 가계 재무구조의 안정, 노동시장의 안정, 공정거래의 확립, 인구구조의 개선, 경제 여건의 개선 등 경제 선진화를 위한 주요 과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시해야 한다. 또 이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경로를 밝혀야 한다. 필자는 이런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한국 경제 선진화 기초 확립 10개년 계획(2020~2029)’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할 것을 제안한다. 청사진은 정부 각 경제부처, 기업계, 금융계, 노동계, 언론계, 학계 대표들이 대통령과 함께 참여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중지를 모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