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의 이슈프리즘] '4류 정치'로는 국가 미래 없다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오프라인, 온라인 모임 할 것 없이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가 불편하다는 이가 적지 않다. 이른바 ‘조국 정국’이 온 나라를 집어삼킨 뒤 나타난 현상이다. 예전에는 생각이 좀 달라도 별 탈 없이 어울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돌이키기 힘든 감정싸움으로 모임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아예 상종하기 싫다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친구관계를 끊었다는 사람도 꽤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정면충돌하려고 마주 달리는 기관차 같다. 극한의 갈등과 분열을 막을 제동장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당파 이익에 매몰된 여·야 정치권은 되레 진영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좌·우와 보수·진보 대결을 넘어 세대 간 대립, 나아가 세대 내 대립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정치 리더십 실종된 나라

정치의 본질은 사회적·경제적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의 생각과 주장이 나와 달라도 설득의 리더십으로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게 정치 활동의 요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폴리스의 정치부터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관통해온 원리다.

역사적으로 이런 포용의 정치 리더십이 제대로 뿌리내린 국가들은 번영을 구가했다.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여러 잘사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례를 바탕으로 밝힌 그대로다.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이 없으면 국가경제 발전을 이끌 사회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내기 어렵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한국 정치는 1990년대 중반에 당시 세계를 향해 뛰던 기업들로부터 ‘4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25년이 지났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그동안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책 없는 편 가르기 탓에 대한민국은 사분오열로 갈라져 있지만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려는 정치 리더십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 모두의 책임인데도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나라가 양분된 채 상대를 향한 날선 비난과 증오의 말만 넘쳐나고 있다.

경제에 울리는 경보음들

정치 위기가 국가경제의 위기로 이어진 사례는 흔하다. 쌓아올리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금 아르헨티나가 그렇고,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도 몇 해 전 위기를 겪었다.

우리 경제에도 경보음이 전방위로 울리고 있다. 모두가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사이 거시 및 미시 경제지표에 줄줄이 빨간불이 켜졌다. 이제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경제체력부터 벌써 고갈될 조짐이다. 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대부분 2%에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악재에다 내부 활력도 예전 같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공장 가동률과 기업이익 증가율도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부채 위기를 둘러싼 우려도 크다. 부채 위험에 대한 경고에도 정부는 내년 재정확대 기조를 앞세워 10년 만에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돈 나올 곳은 줄어드는데 빚이 늘어나면 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요즘 미국과 영국이 ‘분열과 양극단의 정치’로 시끄럽다. 하지만 그들은 부(富)를 축적해온 기간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4류 정치’로는 한국이 번영을 계속할 수 없다.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