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업이 도시다
기업도시를 얘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곳이 일본 도요타시다. 인구 43만 명의 도요타시에는 도요타자동차 본사와 공장 7개가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 부품업체들이 몰려 생태계를 형성한다. 도요타가 도시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지명은 고로모였다. 고로모시는 1959년 도요타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도시 이름까지 바꿨다.

미국에도 기업명을 딴 도시가 있다. 미국 최대 초콜릿 캔디 제조사 허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소도시 허쉬다. 창업자 밀튼 허쉬가 고향인 데리 타운십에 초콜릿 공장을 지으면서 직원 숙소를 포함해 신도시를 설계했다. 특수유리 전문기업 코닝은 도시명이 회사 이름인 경우다. 1851년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서 창업한 에이머리 호튼이 1868년 고향인 뉴욕주 코닝으로 본사를 옮긴 뒤 150년 넘게 회사명을 유지하고 있다. 회원제 할인매장 코스트코는 대표 매장이 있던 도시명을 따 자체브랜드(PB)인 ‘커클랜드’를 만들었다. 기업과 도시가 공동 운명체로 선순환을 만든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은 곧 도시의 얼굴이다. 수원은 삼성, 울산은 현대, 포항은 포스코를 떠올리게 된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은 우리나라 기업도시의 원조다. 1962년 최초 국가공업단지가 조성돼 한국 중화학공업 발전을 견인했다. 자동차, 조선, 정유·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겪었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1인당 6만달러에 달할 만큼 풍요로운 도시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1인당 개인소득 1위를 줄곧 지켜왔던 울산이 2017년 집계에서 1위 자리를 서울에 내줬다. 조선과 자동차산업의 침체 여파다. 삼성전자 기흥·평택·화성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이 있는 경기도는 반도체 호황 덕에 4위로 한 계단 뛰어올랐다. 도시의 성쇠(盛衰)가 기업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왕성하면 도시의 일자리는 늘고 삶의 질은 올라간다. 우량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국가는 물론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유일 것이다. 국가가 주도해 기업도시를 육성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을 옭아매는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뛰게 만들어야 기업도 도시도 나라도 산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