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후진, 너무나 후진…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노맹 동지 박노해는 “후지면 진다”고 했다. 오랜 수감생활 끝에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로 전향을 선언하고 펴낸 첫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다.

저울에 올려진 조 후보자의 무게가 너무 가볍고, 자세는 너무 후지다. 힘과 돈으로 ‘수구좌파’의 민낯을 가려보지만, 후지면 패자가 되는 승부의 원리는 거스를 수 없다. 속속 드러나는 비리 의혹은 하나하나가 ‘역대급’이다. ‘권부의 황태자’가 주가 작전범도 울고 갈 불법적 수법으로 사모펀드에 ‘베팅’했다는 의구심이 눈덩이다. 견습 나간 인문계 고교생이 2주 만에 의학 논문을 제1 저자로 뚝딱 써냈다는 기적의 스토리는 청년들에게 열패감을 안겼다.

특권의식·위선에 포획된 '진보'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드리겠다”며 자청해 지난 2일 연 초법적 기자간담회에서도 조 후보자는 최소한의 정직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시종 ‘모른다’ ‘기억 안 난다’는 후진 해명으로 일관했다. “이번 일이 터지고서야 사모펀드가 뭔지 공부하고 알게 됐다”고도 했다. “론스타(미국 사모펀드) 문제를 잘 안다”며 외환은행 사태에 개입했던 7년 전 조국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말인지. 블라인드 펀드여서 투자 종목을 몰랐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다. 블라인드 펀드는 가입 시점에 투자 종목이 미확정된 펀드일 뿐 차후 운용 현황은 펀드 가입자에게 정기 보고된다. 가입자의 의사에 반하는 투자집행 사례도 거의 없다. 만약 운용 현황을 통보받지 못했다면 블라인드 펀드가 아니라 다른 특별한 목적의 기획 펀드라는 방증일 뿐이다.

조 후보자의 엉뚱한 변명을 반복적으로 듣는 일은 더 고역이다. ‘2주면 고등학생도 의학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출처·팩트 불명의 인터넷 글을 버젓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링크시키는 저급한 행태는 이해불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齊家)를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는 정신승리나 “금수저면 보수로 살아야 하느냐”는 흑백논리에는 한숨만 나올 뿐이다.

조국 사태는 주류가 된 ‘진보 진영’ 전반에 특권의식과 위선이 광범위하다는 증좌다. 임명 반대 여론을 ‘헛소리’로 공격한 유시민 작가, 우상호·이인영·김종민 의원 등 386 실세들의 ‘조국 변호’에서는 진실에 대한 일말의 존중마저 결여돼 있다. 그런 386을 싸고도는 이재정 경기교육감, 박원순 서울시장 등 범좌파 지도자들의 ‘실드’도 수준 이하다.

예술의 정치종속도 위험수위

‘조국 드라마’ 최악의 장면은 정치의 하부구조로 편입된 예술에서 목격된다. 헌법까지 거론하며 사회적 발언에 적극적이던 많은 대중예술인의 침묵이야 예상된 바다. 시류에 아부하는 얄팍함에 정색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깊은 사유로 진실의 파수꾼이 돼야 할 문인들이 특정 정치집단의 프로파간다에 앞장선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다. 부실한 팩트 확인과 자의적 논리 전개에 기댄 조정래 공지영 안도현 등의 ‘조국 지키기’는 우리 사회의 지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희석시키고 있다. “파시즘은 예술을 정치화하고, 공산주의는 정치를 예술화한다”(발터 벤야민)고 했으니, 문단을 넘어 국가의 건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임명하면 게임 끝’이라는 안이함은 착각이다. 힘과 돈으로 밀어붙인다면 좌파의 거의 유일한 자산인 도덕성마저 회복불능이 되고 말 것이다. “간담회로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돌아서서 웃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박노해)는 시민들의 조롱을 감당할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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