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韓·中 협력으로 공급망 변화 대비해야
미·중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오히려 ‘자유무역’을 역설하고, 자유시장경제의 리더인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정무역’을 요구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적어도 미·중 간에는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국제무역의 비교우위론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나쁜 짓은 빨리 배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 기회를 틈타 한국에 수출 규제라는 ‘흉기’를 휘둘렀다.

미·중, 한·일 간 갈등은 정치와 경제가 뒤얽힌 새로운 국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이끈 자유무역 및 투자의 규범과 제도가 정치 논리에 맥없이 밀리는 양상이다. 그동안 세계화 흐름 속에서 성장 동력을 제공한 세계 공급망은 국익을 앞세운 보호주의의 도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중국은 세계 공급망 형성 과정의 최대 수혜자였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한때 개발도상국 총 외자 유입량의 40%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고, 중국은 세계 공급망의 축이 됐다. 그렇다고 ‘세계의 공장’ 중국이 명실상부한 경제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시장과 기술을 서방 선진 경제에 의존해 성장한 중국 경제는 미국이 빼 든 보호주의 칼날에 전전긍긍한다.

한국 역시 무풍지대가 아니다. 한국은 공정기술과 인적자원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일부 주력 산업에서 세계 시장의 주요 공급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 불가피했던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한계, 원천기술·자원 부족 등으로 인해 주요 소재와 부품 및 생산설비는 일본을 포함한 주요국 경제에 의존했다. 안정된 세계 공급망 체계에서 한국의 선택과 집중은 빛을 발했으나, 국제 정치 파고에 쉽게 흔들리곤 한다. 중국과 일본, 심지어 미국까지도 한국 경제의 한계성을 자국 이익 추구에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계기로 세계 공급망에 의존해 성장한 한국과 중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WTO 체제에서 국경을 넘어 작동했던 비교우위와 분업의 효율성은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입지가 줄었다. 이 와중에 그동안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맡았던 한·중 경제 관계도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이제 현상 유지나 이전 또는 청산을 고민하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한국 경제는 제한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세계 공급망 구조 변화의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복잡한 현대 산업에 필요한 주요 부품과 소재, 설비를 모두 자급할 수는 없다. 기업들이 낮은 인건비를 찾아 언제까지나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할 막대한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누가 감내할 수 있겠는가.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보복만으로는 세계 경제 변화의 거대한 흐름에 맞서기 어렵다. ‘세계의 공장’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거대 경제가 자체 시장에 의존해 지속 가능한 발전 궤도에 오를 수 있는 전략적 전기를 마련해야 할 때다.

한국과 중국은 산업 기술 구조와 성격, 발전 단계가 서로 다르다. 최근 국가 간 갈등에 따른 세계 공급망 혼란은 중국이 방대한 내륙 지역 경제를 현대화하고, 대외 의존적인 동남부 연안 지역의 경제 구조를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한국 역시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 중국의 시장 규모와 기초 기술력, 내륙 경제 현대화가 수반할 발전 공간은 ‘가성비’가 뛰어난 한국 기업의 응용기술력 및 발전 노하우와 결합해 상호 보완적으로 세계 공급망의 지각 변동에 대처할 수 있다.

중국은 서둘러 한국 기업에 대한 각종 진입 장벽 완화와 국제 정치의 파고에 휘말리지 않을 안정적 협력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한국 역시 중국과 윈윈 전략 발굴을 통해 세계 경제 질서 변화에 대응하고, 경제 구조를 업그레이드해 재도약의 발판을 확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