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 오랫동안 지속되면
적자 누적·인플레 가능성 높아
민자투자·감세정책 등 고려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슈퍼 예산만 능사냐…'제3의 재정대안'도 많다

10년 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돈을 무제한으로 풀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각국 경기가 재차 침체 국면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중요한 것은 재정정책의 효과다. 케네스 로코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같은 재정적자 축소론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국채 소화 과정에서 상승된 금리로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오히려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동등이론에서 재정지출을 줄이면 소비가 늘어나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해 경기가 살아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슈퍼 예산만 능사냐…'제3의 재정대안'도 많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같은 경기 부양론자는 최근처럼 초불확실성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등을 통해 돈을 무제한으로 푼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럴 때는 국채 공급을 늘려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을 완화해 주면 돈이 실물 경제로 유입돼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재정지출승수는 ‘1’을 웃도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2.2배로 비교적 높게 추정했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축소 논쟁 속에 각국이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 통수권자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국가일수록 더 그렇다.

경기 부양론자도 재정정책에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공급 중시 경제학이 태동했던 1980년대 초반 이전에는 재정정책으로 성장률이 높아지면 곧바로 고용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지표경기가 살아나면 체감경기까지 개선돼 재정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세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초기에 늘어났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도 줄어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정책으로 성장률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더 심해지는 것이 문제다. 이때 높아진 성장률만 감안해 금리인상 등과 같은 긴축정책을 조기에 추진하면 체감경기는 더 악화돼 ‘제2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체감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재정적자 누적과 인플레이션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특정국에서 동일한 시점에 인플레이션(재정 인플레이션이라 부른다)과 디플레이션 요인이 공존하는 이른바 ‘바이플레이션’ 문제로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과제다.

다행인 것은 미국 재정정책 역사상 경기부양과 고용창출,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을 함께 풀어 성공한 사례가 많다.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정부가 추진해 재정과 물가안정 속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신경제’ 신화를 낳았던 ‘페이-고(pay-go)’ 원칙이 그런 예다. 이 원칙은 재정지출 총량은 동결하되 지출 내역에서 부양효과가 적은 쪽은 삭감(pay)하고 그 삭감분으로 부양효과가 높은 쪽으로 밀어(go)주면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적자도 축소됐다.

같은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노믹스 추진으로 우려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민간자본을 참여시켜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BTL(build-transfer-lease: 임대형 민자투자사업)’ 방식과 비슷하다. 전제 조건인 수익률 보전은 대체투자가 대세인 만큼 오히려 인기를 끌 수 있다.

또 하나 우려됐던 재정 인플레이션도 감세정책으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2차 오일쇼크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경제를 구해낸 1980년대 초반 ‘레이거노믹스’를 연상케 하는 감세정책을 추진해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세정책으로 재정 인플레이션 우려를 완화하는 것은 총공급 곡선(AgS·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도출)과 총수요 곡선(AgD·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으로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을 통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세금 감면으로 AgS가 우측으로 이동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물가는 떨어지게 된다.

증세, 적자국채 발행 등을 통한 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예산’으로 경제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한국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3의 재정정책 대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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