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도넘은 시장 개입 아니라는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2일 통신 3사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LG전자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최신 단말기의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해외와 역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5개사 대표에게 과기정통부 장관 명의로 발송했다.

‘어떤 차별이 발생했으니 어떤 단말기를 출시하라’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노트10의 4세대 이동통신(LTE) 모델을 출시하라”는 요구로 해석했다. 사흘 전인 19일 과기정통부 관계자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에 갤럭시노트10 LTE 출시를 권유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통신사는 23일부터 갤럭시노트10과 갤럭시노트10+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5세대(5G) 이동통신 모델만 내놨다. LTE 모델도 있지만 미국 등에서만 판매한다.

과기정통부는 기업들에 내일(30일)까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정부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을 전할 예정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 갤럭시노트10 LTE 모델을 내놨다고 해서 한국에 들여와 바로 팔순 없다. 국내에서 새로운 모델을 판매하려면 법과 규정에 따라 통신망 연동 시험과 전파 인증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최소 2~3개월이 걸린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이유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잘 팔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봄 갤럭시S10 5G 모델과 LTE 모델을 모두 선보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팔린 갤럭시S10 5G와 LTE 모델 판매 비중은 8 대 2다. 5G 모델이 훨씬 많이 팔렸다. 통신 3사가 5G 가입자 모집 경쟁을 벌이며 5G 모델에 더 많은 지원금을 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입장에선 LTE 모델보다 5G 모델 가격이 더 쌌다. 가격만 낮은 게 아니다. 5G 모델로는 속도가 빠른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아직은 5G망이 불완전하지만 내년엔 전국망이 구축된다. 평균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3년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5G 모델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업은 수요를 예측해 신제품을 내놓는다. 삼성전자와 통신 3사는 두 달 전 갤럭시S10 사례 연구와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한국에선 갤럭시노트10 5G 모델만 출시하기로 했다.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갤럭시S10 LTE 재고도 고려했다. 갤럭시노트10 LTE를 내놓으면 갤럭시S10 LTE 재고 소진은 더 어려워진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정교하게 수요를 예측해 택한 신제품 전략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지나친 개입이 아니냐”고 했다.

과기정통부 담당자에게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갤럭시노트10 LTE 모델 출시 관련 민원이나 요구 등 기업들에 공문을 보낸 구체적인 계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그런 계기는 없다.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소비자 선택권 보호란) 원칙에 입각한 권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수요 조사도 없이, 실체도 없는 명분을 위해 기업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개입했다는 얘기다.

이번 협조 공문의 과도한 시장 개입 소지를 정부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에선 “LTE의 ‘L’자도 없는 이상한 공문”이란 얘기가 돌았다. 정부가 과도한 시장 개입이란 지적을 피하려고 협조 공문에 구체적인 서비스명이나 제품명 등을 명기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지적이 두렵다면 지적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