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발행 추진하는 기업들
6조弗 규모 기업 간 결제시장 변할 수도
암호화폐 진화속도 맞춰 지원정책 펴야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전문가 포럼] 암호화폐가 열 '현금 없는 사회'에 대비해야

신용카드 같은 비현금 결제수단 전성시대다.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한국은 ‘비(非)현금화’가 빠른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UBS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일본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는 소비자 거래에서 현금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다. 반면 한국은 최근 10년간 현금 결제가 크게 줄어 아시아에서 비현금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 한국은 2~3년 전부터 편의점에서 카드 결제가 현금 결제보다 많아졌다. 편의점은 현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소매점 중 하나다.

무엇보다 결제수단으로서 현금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디지털 라이프’에 연결된 결제 시스템을 원한다. 최근에는 많은 소매점이 디지털 결제 시 할인 혜택을 주고, 관련 상품을 추천하며, 각종 이벤트 참여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어느 신용카드의 혜택이 많은지도 알려줘 ‘스마트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현금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금으로 지급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지폐 및 동전의 발행비용뿐 아니라 유통비용, 보관비용, 현금 수납을 위한 인건비 등 현금 사용 인프라에 필요한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0.5% 정도로 추산된다. 현금을 공급하는 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여러 디지털 간편결제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화폐가 디지털화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국가 단위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뿐 아니라 다양한 비즈니스 생태계에 최적화된 기업 주도형 화폐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화폐는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이른바 암호화폐공개(가상화폐공개·ICO)란 형태로 초기 투자금을 모금하는 암호화폐가 아닌, 기업의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기업형 화폐’다.

예를 들어 월마트가 세계 수많은 매장과 파트너사가 거래할 때 기존 금융시스템이 아닌 자체 디지털 화폐를 이용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화폐는 투기 수요가 몰리는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고, 달러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형태가 될 것이다.

개별 기업이 자체 코인으로 지급·결제하는 것은 은행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은행이 하던 서비스를 기업이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위협을 새로운 시장 기회로 보고 도전하는 은행이 미국에 있다. 세계 5대 은행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큰 JP모간이다. 기업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기반으로 거래하는 데 필요한 암호화폐를 직접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월마트 같은 대형 기업은 자체 기술부서 또는 IBM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과 손잡고 자체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반면 대개 기업은 복잡한 금융규제와 기술적인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코인을 내놓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JP모간이 새로운 사업으로 코인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기업 간 지급·결제 규모는 하루 6조달러에 이른다. JP모간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2017년 말 정부는 암호화폐 투기를 막기 위해 거래소 가상계좌 개설을 금지한 이후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은 기존 산업과 충돌하면서 초기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그러나 역사 속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듯 이런 갈등과 충돌을 거치면서 사회와 기업이 한 발짝 더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가상계좌 개설 금지 후 2년여가 지난 지금 암호화폐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걱정하는 투기와는 관련이 없는 스테이블 코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계의 수많은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정부 정책도 이런 빠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암호화폐산업은 5G(5세대), 6G를 향해 질주하는데 정부 정책은 이를 따라가기나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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