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보 보복'이라면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한 달 뒤인 지난 2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도 뺐다. 일본의 이런 ‘도발’은 경제보복인가, 아니면 안보보복인가.

이런 의문이 든 것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한 발언에서였다. 그는 “일본은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했으며,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제재·압박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국민의 전시대피 연습을 주장하는 등 긴장을 조성했다”며 “초계기 사건에서 보듯이 일본은 한·일 간 협력을 저해하는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심각한 안보 갈등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의 안보 핵심고리는 오키나와 반환 협상에서 주요 이슈였던 ‘한국조항’이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귀속되더라도 미국은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미군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주한미군이 자동 개입하고, 주일미군도 후방에서 자동 개입하는 사실상 ‘인계철선(引繼鐵線·tripwire)’이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 말 오키나와 반환 협상에 나선 미국과 일본에 ‘한국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결국 1969년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안보가 일본 자체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저서 <적대적 제휴>에서 “한·일 양국 간 직접적인 안보 연계를 최초로 공식 선언한 것”이라며 “한·미·일 삼각 안보 가운데 제3의 축(한·일 축)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미국과 중국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태도를 바꿨다. 1972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발표 이후 한국에 대한 안보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한국 방위를 위한 미군기지 사용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10월 예정됐던 일본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은 1975년 미키 다케오 총리가 김종필 총리와 만나 ‘한국 방위를 위해 미군이 오키나와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재보장했다.

이후 40여 년간 우호적인 한·일 관계가 유지되면서 이 조항에 대한 큰 논란은 없었다. 1951년 미·일 안보조약 체결 때 미군이 유엔군 지위를 활용해 일본 내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한국밀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2010년 일본외교문서 공개에서 드러난 정도다.

문제는 한·일 관계가 최근 들어 급속히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 일본 안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국을 쏙 뺀 채 “미국과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떨어지는 미사일은 더 이상 일본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조항을 파기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조약에서 탈퇴한 바로 다음날인 지난 3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호주에서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 동북아시아 안보라인에 한국 일본 등이 참여할 것인지 여부를 공개적으로 물은 셈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은 일본이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2년 협정 체결을 앞두고 한국이 막판에 포기하자 일본은 미련 없이 손을 털고 미국에 넘겼다. 이번에 한국이 협정 연장을 거부하면 일본은 한국조항 무효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과 일본은 경제 번영을 함께 누렸다. 한국 국민 대부분이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는 이유다. 그러다보니 안보에서도 일본이 핵심 파트너라는 사실을 잊었다. 그 결과 정부도, 국민도 일본과의 경제전쟁에만 몰입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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