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논점과 관점]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생산 투자 소비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에는 비상등이 켜진 지 오래다.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2분기 상장사들의 순이익은 반토막 났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 밑으로 낮춰잡은 국내외 기관만 11곳이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만 아니라고 한다.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악재투성이다.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에 독일 중국 등 주요국 경제지표 부진이 맞물리면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까지 전례를 찾기 힘든 경제·외교·안보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한 비판을 가짜뉴스 매도

위기는 우리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일본 정부는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 경제보복으로 대응했다.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해 1100여 개 전략물자를 일일이 통제하겠다고 나섰다. 최대 피해자는 기업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벌써 50일가량을 보냈다. 하지만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 대응책은 실망스럽다. 불안해하는 기업과 국민에게 정부가 하는 말을 요약하면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산업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자는 거다. 취지는 좋지만 기술 축적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매년 예산 2조원 이상을 투입해 핵심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정작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등 각종 규제를 푸는 것은 뒷전이다. 정부 여당 인사들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써주지 않아 일본에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대기업에 책임을 돌렸다.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도 고통받는 기업에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떠넘기니 기업으로선 분통 터질 노릇일 것이다.

냉정한 평가 통해 정책 바꿔야

더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낙관론을 펴면서 비판 여론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태도다. 4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등 과거 경제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악화된 지표와 국내외 기관의 냉혹한 평가로 볼 때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부족하다. 체격이 건장하다고 병에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는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에서 “위기는 일반적인 대처법과 문제 해결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정직한 자기평가와 선택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취약한데 심리만으로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 불안심리 확산을 막으려는 정부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정당한 비판을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고 낙관적 전망으로 포장한다고 위기를 덮을 수는 없다.

돈을 푸는 재정정책이나 ‘평화경제’ 같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제대로 진단해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정직한 자기평가를 통해 경제 상황을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결단이 절실하다.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