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잠수함 토끼'와 '탄광 카나리아'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잠수함에서 근무했다. 당시 잠수함에는 산소측정기가 없었다. 병사들은 산소 농도에 민감한 토끼를 태웠다. 이상이 생기면 토끼의 반응을 보고 위험을 감지했다. 게오르규는 이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며 시대 변화에 민감한 시인·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동물의 위험 감지력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만 해도 탄광에서 가스 중독 사고가 많았다. 광부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카나리아였다. 이 새는 일산화탄소와 메탄에 유독 약하다.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갱도로 들어갔다. 석탄을 캐다가 카나리아가 이상증세를 보이면 즉시 탈출했다.

동물들은 생태계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에 앞서 특이 행동을 보인다. 몇 년 전 스리랑카에서 지진과 해일이 발생했을 때도 동물들은 높은 지역으로 미리 대피했다. 땅속 흔들림이나 지하수의 변동, 기압과 전자파 변화 등 전조를 알고 먼저 움직인 것이다.

유럽의 포도밭에서는 지하 와인 저장고에 들어갈 때 촛불을 들고 간다. 조명 용도 외에 와인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가스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포도나무 옆에는 붉은 장미를 심는다. 병충해에 민감한 장미는 포도나무병의 감염 위험을 알려주는 파수꾼이다.

‘잠수함 속의 토끼’와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경제의 위험 신호를 알리는 용어로도 쓰인다. 수출·해외자본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위기에 민감하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싱가포르의 2분기 성장률이 -3.3%까지 곤두박질쳤다. 연간 무역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3배에 이르는 싱가포르는 높은 개방성 때문에 세계 경기를 가늠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로 불린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영국과 독일의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지난해 미국 유럽의 긴축으로 위기를 겪었던 터키 또한 높은 해외 자본 의존도 때문에 ‘탄광 속 카나리아’로 분류된다.

한국 경제에도 위험 신호가 늘어나고 있다.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기술혁신은 지지부진한 반면 정책 리스크는 쌓이고 있다. 혹시라도 위기 징후를 부인하거나 귀에 거슬린다고 ‘카나리아’를 때려잡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커지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