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국제분업과 기술독립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면서 우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1980년대 말 한·중 수교 이전, 톈안먼사태 발생 직후엔 중국인들이 시장경제의 힘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부러워하는 분위기였다. 1990년대 후반 내가 산업부 과장을 지낼 때만 해도 이런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방문한 칭다오시는 부시장이 우리나라를 1년에 40차례 이상 방문할 정도로 우리의 기술·경영 노하우와 투자 유치를 원했다. 상하이 철강업체 관계자들은 우리나라를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언급할 정도로 우리를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산업부 국장 시절엔 적지 않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현실화됐다. 한국 경제와 국가 수준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오쩌둥 고향이면서 내륙도시인 창사에서는 아직 우리를 선진국으로 환대했다. 동행했던 업체들의 3D 입체 기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최근 중국은 우리를 더 이상 크게 배울 것도 없는, 작은 주변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부 중국인은 노사 갈등, 규제 강화 등과 관련해 우리를 걱정하면서 기술로도 중국이 앞선다는 주장을 했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특정 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해 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3D 입체 기술이 그랬고, 수소차 기술이 그렇다. 자동차의 경우 전반적 무관심 속에서 수소차 엔진인 스택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적지 않은 반대급부 제공도 가능하다는 자세다. 모든 기술이 아니라 사용이 불가피한 한국만의 독자기술을 보유하면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의 자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대책도 나온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한 기업 안에서도 분업은 생산성을 높인다. 산업혁명 이후 부침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는 생산 원리 중 하나가 분업이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각국의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분업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인다. 모든 품목에서 자립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점을 둬야 할 전략은 자립이 아니라 일부라도 일본 기업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부품이나 소재의 독자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일 간 분업은 양국 관계의 악화 여부와 관계없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선택은 기업에 달려 있다. 이제까지 보여준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업인들의 헌신을 기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