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말(言)의 무게

“임대 아파트 월세 114달러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과정을 어릴 때 아버지와 임대료 수금하러 다니던 일에 빗대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과격한 협상 방식을 설명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억양을 흉내 내기도 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앞둔 지난주에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형편없다.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리는 트윗을 날렸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15시간 후에 내놓은 반응이었지만 미사일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70년간 한·미 동맹의 린치핀(핵심축) 역할을 해 온 연합훈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한술 더 떴다. 일개 외무성 국장이 한·미 연합훈련 첫날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그는 ‘겁먹은 개’라는 극언까지 동원하며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을 내세워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일본도 툭하면 망언으로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양국 사이에 다르게 쓰이는 어휘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와 관련,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자 외무성의 차관급 간부가 “무례하다”며 맞받아쳤다.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의미로 일본어에는 없는 표현이다. 일부 일본 언론이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휘둘러댄다’는 뜻이라고 직역(直譯)하면서 일본인의 반발심리를 부추겼다. 일왕을 ‘전범(戰犯)의 아들’로 표현한 문희상 국회의장에 맞서 일본 외상이 “한일의원연맹 회장까지 지낸 인간이…”라고 응수한 적도 있다.

어쩌다 이런 극언이 난무하게 됐을까. 말을 뜻하는 ‘언(言)’과 ‘어(語)’에는 ‘입 구(口)’가 들어 있다. 품격을 의미하는 ‘품(品)’에는 ‘구(口)’가 세 개나 있다. 주고받는 말이 쌓여 인격을 이룬다. 개개인의 말에도 격이 있는데 하물며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정치인들의 말임에랴. 주변의 ‘막말 잔치’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처신과 대응이 어땠기에 이렇게 조롱까지 당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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