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및 미·중 간 경제전쟁이 동시에 터지면서 우리 경제가 전례없는 절체절명의 복합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 와중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주력부대인 금속노조 소속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지난 5일 ‘재벌규탄 문화제’를 시작으로 ‘하투(夏鬪)’에 돌입했다. 이달 중순부터는 민노총 핵심인 자동차·조선산업 노조가 가세해 정년 연장과 임금 인상, 구조조정 반대 등의 요구를 내걸고 ‘릴레이 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건설노조와 금융노조의 파업도 초읽기다.

국가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자신들의 몫을 늘리는 데만 몰두하는 대형 노조의 행태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매우 부적절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겠다는 행태”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친노동’을 표방하는 정부조차 민노총 등의 이번 하투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경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내외 경제여건이 엄중한 터에 일본의 경제공격까지 받고 있어 노사의 대립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파업 중단을 요청했다.

노조와 최일선에서 맞부딪치는 기업들은 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한경과의 인터뷰(8월 8일자 A5면)에서 “노조도 기업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노조 내부에서도 “지금이 이럴 때인가”라며 매년 숙제하듯 관행적으로 파업하는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민노총을 비롯한 대형 노조 지도부가 이런 현실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노조를 정치적 권력도구로 삼는 한줌의 직업적 ‘꾼’들을 빼고는 달라진 상황에 맞는 노조활동의 변화를 고민하는 모습도 뚜렷하다. 민노총 금속노조가 세계자동차산업의 급속한 변화와 그에 따른 노조의 미래를 고민하는 내용의 두툼한 연구보고서를 몇 달 전에 내놓은 게 단적인 사례다. 지금의 위기상황은 노조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한 ‘정치화의 덫’과 그로 인한 습관성 파업으로부터 빠져나올 기회가 될 수 있다.

노조가 구태(舊態)를 벗어던지고 미래지향적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바깥으로부터의 환경조성도 중요하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부화하려고 할 때 밖에서 어미닭이 같이 껍질을 쪼아주는 줄탁동시(啄同時)와 같은 외부 지원이 노조의 환골탈태에 필수적이다. 이 작업을 해내야 할 곳이 바로 정부다. ‘87체제’ 이후 역대 정부는 조직화한 대형 노조의 온갖 요구에 밀리며 거대 권력화를 야기한 원죄를 안고 있다. ‘시대변화에 맞춰 노사관계도 선진화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과는 ‘노사관계 후진화’라는 정반대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기득권을 거머쥔 거대 노조 조합원들의 대우만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아졌을 뿐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는 그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노동시장 내 양극화로 귀결되고 만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심각성을 인정하고 노조의 일대변신을 이끌어내는 조치를 서둘러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거대노조들도 싸늘한 시선 대신 모처럼 국민의 박수를 받는 전략적 선택과 근본적 변화를 고민할 시점이다. 지금의 복합 경제위기를 뒤틀린 노사관계 선진화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화위복(轉禍爲福)’ 사례를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