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시인
[고두현의 문화살롱]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 시인들

‘젊은 시인 윤동주/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그대들에게는 광복절/우리에게는 항복절인/8월 15일이 오기 겨우 반년 전 일이라니/아직 교복 차림으로/순결을 동결시킬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십니다.’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이웃 나라 말의 숲’에 나오는 구절이다. 윤동주보다 10년 뒤에 태어나 2006년 세상을 떠난 그는 윤동주를 제대로 알기 위해 한글을 배웠다. 이 시 앞부분의 ‘일본어가 밀어내려 했던 이웃 나라 말/한글/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글/용서하십시오/땀 뻘뻘 흘리며 이번에는 제가 배울 차례입니다’라는 대목이 그래서 더욱 찡하다.

한글 배워 낭송…교과서 실어

그는 “윤동주 덕분에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알 수 있었다”며 ‘장 폴 사르트르에게’라는 시에서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왜 죄 없이 살해됐는가’라고 물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빗댄 것이다.

‘총독부에 다녀오다’라는 시에서는 ‘한국의 노인은/지금도 변소에 갈 때/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총독부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어쩔 수 없는 사정/그것을 배설에 빗댄 해학과 신랄함’이라고 풍자했다.

그가 윤동주를 좋아해서 쓴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일본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 출판사의 편집장 노가미 다쓰히코와 함께 7년간 문부성(현 문부과학성)을 설득한 결과였다. 이 교과서는 1990년 이후 77만 부 이상 발행됐다.

또 다른 시인 우에노 미야코가 완역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2015)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의 섬세한 마음과 영혼까지 느끼게 해주는 완결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지금도 윤동주 기일인 2월 16일이면 추모회를 열고 ‘서시’를 낭송한다. ‘별 헤는 밤’의 마지막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구절에서는 목이 메기도 한다.

잊힌 무덤 찾아내고 곳곳 詩碑

윤동주의 발자취를 훑어 <생명의 시인 윤동주>라는 평전을 펴낸 작가 다고 기치로도 빼놓을 수 없다. NHK방송 프로듀서였던 그는 10여 년의 노력 끝에 윤동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를 방영하며 윤동주 시비 건립을 제안해 윤동주가 유학한 교토의 도시샤대에 1995년 첫 시비를 세웠다. 윤동주가 체포되기 전 소풍 갔던 자리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을 발견해 그곳에 2017년 세 번째 시비를 세웠다.

두 번째 시비는 도쿠야마 쇼초쿠 일본 교토조형예술대 이사장이 윤동주 하숙집터를 사들여 조성한 이 대학 제2캠퍼스에 있다. 윤동주가 처음 유학한 도쿄 릿쿄대에 네 번째 시비, 형무소에서 옥사한 후쿠오카에 다섯 번째 시비가 곧 건립될 모양이다.

이 밖에 윤동주 시집을 처음 번역한 이부키 고, 윤동주 무덤을 옌볜에서 찾아내 세상에 알린 오무라 마스오, 윤동주의 ‘독립운동’ 혐의를 정부 서류에서 발굴한 국회도서관 부관장 우지고 쓰요시 등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일 간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윤동주를 사랑하고 ‘식민지 청년’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이 있어 윤동주는 죽어서도 외롭지 않다. 그러고 보니 윤동주가 노래한 하늘과 바람과 별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그의 무덤에 ‘자랑처럼 무성한’ 풀과 함께 오늘 밤에도 한·일 양국의 하늘 위로 ‘한 점 부끄럼 없는’ 별이 바람에 스치우겠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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