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라가르드는 ECB 총재 적임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후임자로 선정됐다. 몇몇 비평가들은 라가르드 총재가 중앙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부족하다며 반대한다. 다른 이들은 그녀가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중앙은행 총재가 지녀야 할 덕목엔 다른 것도 많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남성 위주인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이번 결정에 아연실색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실을 과장한 보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라가르드 총재 임명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면 그들의 주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라가르드 총재는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다른 모든 능력이 같을 경우엔 교육을 더 받은 쪽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 발달에 따라 요즘 통화정책 운용법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의 정책이나 사례를 잘 알아도 오늘날 통화정책을 내놓는 데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도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다. 드라기 총재 전임자인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도 경제학 박사가 아니었지만 중앙은행을 이끌며 효과적인 정책을 내놨다.

이제 중앙은행은 이전과는 다른 정책을 내놔야 한다. 실질금리가 전에 없는 수준으로 내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중앙은행은 기존 통화정책이 사실상 힘을 쓸 수 없는 ‘제로 금리 하한선’을 다뤄야 할 공산이 크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금리 관련 신호를 주는 시그널링, 포트폴리오 균형 맞추기 등 대안적 메커니즘을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중앙은행 총재로 일할 때 중요한 것은 학위 증명서가 아니라 경제적 주장과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에서 일하면서 모리스 옵스펠드, 지타 고피나스, 올리비에 블랑샤 등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들과 오래 협력해 왔다. 그들의 조언에 따라 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우려는 라가르드 총재가 중앙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IMF의 문화나 일상 업무, 주요 관심사 등은 중앙은행의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바로 의사결정 과정이다. IMF와 각국 중앙은행 모두 전문가들이 쓴 서류를 검토한 뒤 토론과 심의 등을 거쳐 결정을 내린다. 합의를 선호하지만 소수의견도 존중한다.

IMF가 각국 통화정책을 주시한다는 점도 중앙은행과 관련이 크다. IMF 직원이 현장에 파견될 때엔 항상 그 나라 중앙은행과 협업한다. IMF 총재도 통화정책 주요 요소에 대해 상당 부분 지식이 있을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 자체 연례회의, 주요 7개국(G7)·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국제 경제 관련 회의에 참석하면서 중앙은행 사람들의 문화도 충분히 익혔을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ECB를 이끌 만한 장점이 여럿 있다. 일단 그는 정치적 스킬이 있다. 요즘처럼 통화·재정정책이 국가 정책 논의의 중심이 되는 시절에 특히 유용할 것이다. 또 그는 프랑스 재무장관으로서 재정정책을 총괄한 적이 있다. 국제적 사안을 많이 다뤄봤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제는 통화정책의 초국경적 여파가 중요하므로 그런 경험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가르드가 총재로 임명되면 중앙은행의 성 평등 실현을 거들 수 있다. 폴리티코의 “남성 위주인 중앙은행” 지적은 현실적이다. ECB는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도 유독 남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구의 절반인 남성이 대부분인 중앙은행 이사회는 정당성 문제를 겪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라가르드가 리더십을 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의 남성 위주 구성을 넘어서는 게 중앙은행이 그간 시달린 ‘집단사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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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