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불매운동과 소비자 주권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이른바 ‘보이콧 재팬’ 운동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번 불매운동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개인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고, 여느 때와 달리 온라인을 통해 빠르고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입장도 있다. 국내 일본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안 좋을 것이며,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조심스러워하는 견해들이다.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이번 불매운동이 소비 행동을 통해 개인의 의견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행위이고 시위 행위란 점은 분명하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의사표현 수단 중 하나가 투표다. 때로 정치가가 내건 공약을 당선 후 지키지 않을 때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유권자들은 다음 선거 때까지 자신의 의사를 나타낼 기회를 기다린다. 소비 행동 또한 투표와 마찬가지 의사표현 수단이지만 이 둘은 차이가 있다.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개인은 그 기업이나 정책에 ‘찬성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 행위는 선거처럼 4~5년에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365일 가능하다.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를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이라고 했다. 소비자가 소비를 하는지 안 하는지가 곧바로 생산에, 그리고 기업의 이득과 손실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으려면 소비자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소비자는 이런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자 주권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는 것이 ‘보이콧’이다. 보이콧이란 용어는 19세기 아일랜드에서 나왔다. 영국인 퇴역 장교인 농장주 찰스 보이콧이 소작료를 체납한 소작농들을 쫓아내려 하자 이에 대항하는 조직적 행동이 벌어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런 보이콧, 즉 불매운동으로 유명한 사례는 이방카 브랜드 불매운동으로 알려진 ‘그랩 유어 월렛(grab your wallet·지갑을 움켜쥐어라)’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가 한 성적 발언(“grab her by the pussy”)이 문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그랩 유어 월렛 캠페인이 벌어졌다. 이 캠페인은 트럼프의 딸인 이방카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 캠페인으로 지난해 7월 이방카의 회사는 문을 닫았다.

보이콧에 ‘바이(buy)’가 결합돼 의도적으로 특정 상품을 구입하는 ‘바이콧’도 있다. 보이콧과 바이콧처럼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인 이유로 제품을 구입하거나 회피하는 ‘정치적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시위나 데모가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에서 쉽게 집단을 형성할 수 있어 더욱 거대한 시위가 가능하다. 보이콧 재팬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고 그 규모가 커지는 것 또한 온라인의 효과이기도 하다. 온라인 시위는 집단행동이라기보다 ‘연합행동(connective action)’이다. 주최 기관도, 특정 리더도 없이 서로가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연결돼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가상의 집단이 형성된다. 특히 온라인의 익명성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갖게 된다. 이로 인해 가상공동체 안에서 연합성이 더욱 강화된다.

불매운동은 주권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적극적인 불매나 소극적인 불매 모두 개인의 의사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단순한 집단심리의 발로라고 폄하하는 것도, 반대로 불매운동에 소극적인 신중론에 비겁하다고 단언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각기 다른 의견과 그에 따른 의사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