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이고 성숙한 日제품 불매
포퓰리스트 아베의 '아킬레스건'
韓정부 대응보다 더 부담 느낄 것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아베가 가장 두려워하는 '韓 위기극복 운동'

금융위기 이후 세계와 한국 경제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규범과 이론, 관행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케인지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뉴 노멀 시대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뉴 라운드, 파리 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약화되는 추세다. 국제 규범의 구속력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역 블록도 붕괴될 조짐이 일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영국의 탈퇴, 즉 브렉시트를 놓고 3년 넘게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등에서 ‘제2의 브렉시트’ 논쟁이 거세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는 한 차원 낮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재탄생했다. 다른 지역 블록은 존재감조차 없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아베가 가장 두려워하는 '韓 위기극복 운동'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쌍무 협력도 ‘스파게티 볼 효과’가 우려될 정도로 복잡해 교역 증진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란 삶은 국수를 그릇에 넣을 때 서로 얽히고설키는 현상을 말한다. A국이 B국, C국과 맺은 원산지 규정이 서로 달라 협정 체결국별로 달리 준비해야 하는 수출 업체에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다.

국제 통화 질서에서는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뚜렷하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함에 따라 현 국제 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 즉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 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국제 금융기구의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관련해선 중국판 IMF인 긴급외환보유기금(CRA)이 조성됐고, 유럽판 IMF인 유럽통화기금(EMF) 창설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신개발은행(NDF)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설립됐다.

세계 경제와 국제 통화 질서의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무정부·무규범(anarchy)’ 시대로, ‘정글의 법칙’이 적용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같은 포퓰리스트가 판친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짐의 말이 곧 법’이라고 할 정도다.

절대 군주 시대에 각국 간 관계는 자국 혹은 절대 군주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중상주의가 번창한다. 미·중 무역마찰이 본격화하면서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된 ‘세계화 4.0’과 같은 의미다.

슬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변되는 뉴 노멀 시대엔 한국처럼 대외 환경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미·중 무역마찰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충격을 많이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뉴 노멀 시대에 일어나는 변화를 잘 읽지 못했다.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 역학관계에서 ‘소외(passing)’당하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이 남북한 관계 개선에 쏠림에 따라 미국,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과정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의 기형적인 대외 정책 운영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나왔다.

‘경제 절대 군주 시대’에 한국과 같은 국가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 경제(혹은 통수권자)의 역학 관계를 감안해 대외 정책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후’보다 ‘사전’ 대응이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사전 대응 수단은 신뢰를 잃지 않는 일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땐 국민이 보여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보다 일본 제품 불매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한국 국민의 자발적이고 성숙한 위기 극복 운동’을 아베 총리가 가장 곤혹스럽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 국민의 위기 극복 운동에 힘을 보탠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