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본 수출규제 대응책의 하나로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를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끈다. 홍 부총리는 그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R&D만이라도 주 52시간제 예외업종으로 해줄 생각이 있느냐”는 의원 질의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R&D 관련은”이라고 답변했다.

당장 뾰족한 해법이 안 보이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해 정부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 52시간제 예외 업종은 근로기준법에 나열돼 있어, 이를 확대하려면 국회에서 법을 고쳐야 한다. 기재부가 곧바로 “홍 부총리 발언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이며, ‘적용 예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정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수출규제가 가시화되고 나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반도체 R&D의 주 52시간제 예외를 검토한다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동안 기업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획일적 주 52시간제의 문제점을 호소했지만 이를 보완할 탄력근로제 적용기간(현행 3개월) 확대조차 국회에서 막혀 있는 형편이다. 정부와 국회가 세계와 경쟁하는 산업의 치열함과 복잡함을 이해한다면 이럴 수 있을까 싶다.

주 52시간제 보완이 시급한 분야가 어디 반도체뿐이겠는가. 여당 의원들의 공언처럼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전’이 된다면 자동차, 정밀기계, 화학, 정보통신기술(ICT) 등 무수한 분야가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산업경쟁력의 기초실력인 R&D는 과제 집중, 실험 연속성, 인력대체 곤란 등으로 인해 애초에 주 52시간제 적용이 어려웠다. 몇 달씩 밤 새워가며 연구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지난(至難)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공약의 함정’에 빠져 강제적·획일적 주 52시간제를 고집한다면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