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거노믹스(veganomics)'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육류 위주의 요리보다 한국 음식 같은 채식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평소 아티초크와 파스닙 같은 건강 채소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생선과 채소만 먹는다. 몇 년 전 채식 식품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디캐프리오가 투자한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의 주가는 올해 5월 나스닥에 상장한 첫날 공모가(25달러)의 두 배를 넘었다. 2주 만에 4배에 육박했고, 2개월여 만에 7배까지 치솟았다. 또 다른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인 임파서블푸드 등 경쟁 회사들의 기업가치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들은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고기와 같은 맛을 내는 ‘대체육’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고기 대체식품 시장 규모가 내년에 52억달러(약 5조83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채식주의자(vegan·비건)에 경제를 합친 신조어 ‘비거노믹스(veganomics)’는 이미 비즈니스 용어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식물성 원료로 만든 화장품과 옷 등 뷰티·패션시장에서도 관련 소비가 늘고 있다.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2016년부터 연평균 약 6.3% 성장하고 있다. 비건 화장품 업체 아워글래스는 지난해 “모든 제품을 2020년까지 100% 비건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서양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서는 대체육 관련 상품이 ‘10대 혁신상’에 두 개나 포함됐다. 1월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비건페스타’에도 114개 업체가 몰렸다. 방문객은 사흘간 1만5000명에 달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 명으로 2008년 15만 명에서 10배 증가했다. 채식 전문 식당도 2010년 150여 곳에서 지난해 350여 곳으로 8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채식주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식물만으로는 인체에 부족한 영양분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단백질과 칼슘, 철분, 비타민B12 등을 육식에서 보충하며 영양의 균형을 잡아왔다.

전문가들은 된장·김치 같은 한국의 발효음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권하기도 한다. 우리 전통의 맛과 영양을 살린 비건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