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韓·日 갈등, 세계 IT 발목 잡지 말아야
일본이 한국 반도체산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포함한 세 가지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에 결정적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다른 분야 소재, 부품, 장비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년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한 반도체의 수축은 한국 경제에 외환위기 때보다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세계가 현 사태의 근본을 이해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이번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에서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맞고 있다. 반도체 소자의 크기가 10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이하로 소형화되면서 더 이상 무어의 패러다임으로 반도체 칩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쉽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IT의 성장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반도체 업계는 소형화의 극한을 뚫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인텔과 마이크론, 대만의 TSMC 정도가 결국 살아남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는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가 최근 ‘7nm 이하’까지도 서비스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이렇게 극한을 뚫는 과정은 학계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의 장비 및 소재업체까지 함께 지원해 왔다. 예컨대 10nm 이하용 노광장비를 공급하는 회사인 유럽의 ASML의 장비 개발에 한국, 미국 등이 자금을 대고 참여했다. 일본 기업 역시 소재 개발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 반도체산업은 인류 공동의 결실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전 지구적인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결실로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반도체기업 공정엔 다른 나라 기업의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와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업체들이 개발한 값 싸고 신뢰성 높은 10nm급 반도체칩을 글로벌 IT 업체들이 쓰고 있다. 세계적으론 반도체칩을 통해 컴퓨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 병원의 빅데이터가 돌아간다. 인류의 희망으로 거론되는 4차 산업혁명 또한 가능하게 됐다.

협업은 장려되지만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행태, 즉 반도체 회사끼리의 담합 및 기술도용 등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서 통제된다. 이런 규제와 관리를 통해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분업’ 형태가 됐다. 각 국가와 기업의 역량에 따라 잘하는 분야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국가가 안보와 무관한 소재를 전략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대 인류가 이룩한 합리적 자유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지난 60년간, 한국과 일본은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였던 ‘제국주의’시대를 합리적으로 청산하고 인류에게 모범이 되는 바람직한 성장을 해 왔다. 두 국가의 성공 배경에는 서구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인류 공영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중요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고, 앞으로 이를 더 확장한다고 한다. 한국은 반작용으로 자급을 위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은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사소한 장기 하나가 한 사람의 사활을 결정하듯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단순한 칩 생산량의 감소뿐만 아니라 첨단 제조 역량이 장기적으로 허약해진다. 일본의 IT 회사 또한 포함될 것이다.

수출 규제를 결정한 요인은 주로 부정적인 과거의 역사다. 이 일이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 발목 잡기의 결과가 단순히 두 나라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한·일 정부는 좀 더 진지하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로에게 부메랑이 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