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목소리 듣기보다 정부 메시지에 치우친 간담회
날벼락 맞은 기업들에 힘 보태줄 방안 뭔지 숙고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대기업 대표들이 청와대에서 가진 간담회는 답답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야기된 위기의 해법을 허심탄회한 토론으로 찾아보자던 취지와 달리 대통령의 메시지만 부각됐다. ‘비상한 각오’ ‘장기전 준비’와 같은 비장한 말이 오갔을 뿐, 구체적인 대응책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더 답답해졌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실효성 있는 대책에 머리를 맞대기보다 청와대가 애초부터 ‘전시용’으로 기업을 들러리 세운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 사람당 발언 시간을 3분으로 정하고 ‘마감시간 준수’를 대놓고 압박하는 등 기업인들의 생각과 고언을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더 이상 막다른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정치적 대일(對日) 메시지를 던진 게 부각됐을 정도다. 이럴 거면 외교채널이나 대변인을 통하면 되지 굳이 바쁜 기업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이유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기업인들을 안심시킬 만한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단기대책으로 ‘수입처 다변화’와 ‘해외 원천기술의 도입’, 근본 대책으로는 ‘핵심부품·소재·장비 국산화’를 거론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읊어온 레퍼토리인 데다 대통령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달 중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제안을 듣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기업인은 없었을 것이다.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국산화를 추진하겠다는 대목에서는 국제 분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이해부족이 감지된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의존성’을 외면한 자체 개발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장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렵게 성공한다고 해도 한정된 투자재원을 국산화에 쏟아붓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자칫하면 차세대 낸드플래시 메모리나 비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진짜 중요한 투자에 소홀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하겠다며 격려하기보다 기업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대목도 불편했다.

돌아볼수록 일본의 대응은 절묘했다.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약점을 치는 ‘핀셋 규제’를 들고나왔다. 일본인 98%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는 안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때맞춰 나오는 등 일본의 반격은 치밀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소통을 빙자한 ‘쇼통’에 치중한다면 진짜 큰 위기를 자초하는 것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실효성 높은 민관협력에 나서야 한다. 적지 않은 기업인들은 이번 간담회에서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핵심소재를 국산화하려면 산업안전법 화학물질관리법 같은 규제완화가 선결과제”라는 제안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분위기에 압도돼 제대로 ‘쓴소리’를 내지 못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소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