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국이 금융산업 육성했듯
디지털 플랫폼 혁신 추세 발맞춰
미래 먹거리 핀테크 생태계 키워야

박영석 < 자본시장연구원장 >
[시론] 저성장 탈피, 핀테크로 승부하자

미·중 무역 분쟁과 더불어 한·일 무역 갈등의 확대로 한국 경제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잠재성장률은 국가가 보유한 노동, 자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지표로,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 확대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의 기대수익률이 낮고, 생산가능인구 또한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서다.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통적인 상품 교역은 6% 줄어든 반면, 서비스 교역은 디지털 세계화의 영향으로 60% 이상 늘었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생산 및 공급망 혁신에서 디지털 플랫폼 혁신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어 디지털 경제의 부가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핀테크는 디지털 경제에 지급결제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디지털 정보를 생성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돕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매우 크다. 따라서 핀테크를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에 소비자 편익 증대 및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고, 규제 적용 특례를 포함하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을 제정했다. 올 4월부터는 이 법을 기반으로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해 총 37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 그중에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금융회사의 대출조건을 손쉽게 비교해 저렴한 대출서비스를 받는 것과 해외 출입국 시에 여행자보험이 자동으로 켜졌다 꺼지는 서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금융업 인가 단위를 간소화한 스몰 라이선스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핀테크 기업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규제개혁이 효과를 발휘해 한국 핀테크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금융회사들의 추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금융회사와 핀테크 기업들이 협력해 개방적이면서 경쟁적인 핀테크 생태계가 조성돼야 혁신적인 금융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자금 조달, 데이터 접근, 판매 채널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모험자본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데이터 및 물적·인적 인프라를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자체 정보기술(IT) 전문인력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골드만삭스, JP모간, UBS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전체 인력의 10~25%를 IT 전문 인력으로 채용해 핀테크를 육성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 보험, 증권회사의 IT 전문 인력은 3~5%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내 금융회사와 핀테크 스타트업은 해외 동반 진출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IT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로, 디지털 세계화를 선도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국은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디지털 서비스를 경험한 젊은 소비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다. 더불어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서비스 수준은 한국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어, 한국 핀테크산업이 진출하면 신흥국 젊은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신(新)남방정책에 따라 아세안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가 비대면 계좌 개설 및 대출 서비스를 제공해 디지털 영업망을 빠르게 개척한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1980년대 영국이 ‘빅뱅’을 통해 금융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했듯이, 한국이 저성장 함정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핀테크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한국 핀테크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금융회사는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화답해 핀테크 생태계 육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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