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회복 추구한다는 3기 신도시
소비자 니즈 무시하면 외면받을 것

이정선 건설부동산부 차장
[편집국에서] 유럽형 신도시라는 환상

르코르뷔지에는 ‘많은 사람이 효율적인 공간에 살 수 있는 집’을 주창한 현대 건축의 선구자다. 그가 1935년 펴낸 ‘빛나는 도시’에는 산업화로 인한 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초고층 건물과 오픈스페이스를 활용한 녹지 조성 등 현대 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엔 파격적이던 그의 건축이론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 구현됐다. 고층 아파트 위주로 조성된 한국의 1, 2기 신도시도 르코르뷔지에의 흔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3기 신도시는 다른 방식이 모색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연 ‘신도시 포럼’에서 저층·고밀 설계 방안이 제시된 데 이어 개발 주체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가급적 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 같은 유럽형 도시를 표방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공동체 회복을 추구한다는 의도에서다.

고층형과 저층형 도시 중 어느 쪽이 나은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런던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우열을 따지는 것처럼 무의미한 비교다. 하지만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실거주자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유럽형 주택은 쉽게 말해 박스를 쌓아올리는 대신 바닥에 다닥다닥 늘어놓은 모양에 가깝다. 층수가 낮은 만큼 경관을 보존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산과 강을 가린다는 비판을 받는 고층 아파트와는 분명 대비되는 장점이다. 그렇다고 보기 좋은 집이 반드시 살기도 좋은 집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저층 거주자의 조망은 주로 앞집이나 옆집이다. 넓게 펼쳐진 도시를 오가려면 보행 거리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저층·고밀형 주택이 거주자보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설계’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한국에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에 많이 지어진 다세대·연립주택이 저층·고밀형 주택의 대표적 사례다.

국내 수요자들의 성향은 어떨까. 건설·분양업계에 따르면 대체로 조망이 우수하고, 햇볕이 잘 들고, 환기가 잘되는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유럽과 달리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극명한 한국의 기후 조건이 원인이다. 고온다습한 여름, 추운 겨울을 견디기 가장 좋은 집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 살아본 사람은 안다. 남향집이 왜 좋은지를. 성냥갑이란 비판에도 판상형의 고층 아파트가 국내 주택의 주류로 자리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같은 서울 강남인데도 고층 아파트에 비해 다세대·연립주택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그래서다. 저층 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다닥다닥 밀집한 다세대주택이 아니라 띄엄띄엄 조성된 저층·저밀의 타운하우스를 원한다.

3기 신도시의 도시계획은 기존 1, 2기 신도시와의 연계성뿐만 아니라 분양성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대규모 주택 공급이란 3기 신도시의 목표를 충족하면서 유럽형 저층·고밀형 도시로 조성하려면 ‘ㅁ’자(字) 형태의 주택을 밀집해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구조라면 수요자가 기피하는 북향(北向) 주택 건립도 감수해야 한다.

신도시가 보기에 예쁘지만 당장 입기엔 불편한 ‘패션쇼’장이어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정말로 3기 신도시의 완성도와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번듯한 GTX나 지하철 노선을 제때 깔아주는 게 낫다. 불만이 가득한 2기 신도시에서 정답을 찾으면 된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고상한 건축미학이 아니라 좀 더 쾌적하게 거주할 수 있는 도시,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신도시다.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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