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감정 자극하는 대신 교류 강화
'제조 분야의 완전한 독립' 앞당겨야

박래정 < 베이징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
[세계의 창] 美·中 갈등에서 배우는 일본 수출규제 접근법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품목 세 가지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일본이 품목을 미리 귀띔해줬더라도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비교우위와 기술 격차로 형성된 국제 분업구조라는 것이 몇 달 새 뜯어고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여지없이 일본 상품 불매론이 등장했다. 일본 여행을 가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일본 상품을 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일본 관광을 다녀온 것이 일본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던가. 입장을 바꿔보자. 방탄소년단(BTS) 음원을 구매하는 일본 청소년은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지갑을 여는 걸까.

국내 언론들은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일본 언론의 비판에 확대경을 들이대며 아베 신조 정권이 선거만 끝나면 보복조치를 물릴 것이란 섣부른 관측까지 내놓는다. 일본 사회는 “독도는 한국 것”이란 주장도 공개적으로 표출할 정도의 다양성을 가진 나라다. 자국 언론의 비판 정도로 아베 총리가 한번 꺼낸 칼을 칼집에 도로 넣으리라는 예상은 너무 순진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나라는 일본 반대쪽에 있다. 중국이 미국과 대치하면서 겪는 시행착오 말이다. 중국은 미국과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한 지난해 초까지도 국제 사회에 우군이 많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이 철강 보복관세를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남발하던 시기였다. 중국이 ‘보호무역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다른 선진 제조 강국들이 미국 비난에 동참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중국의 불공정 행위에 넌덜머리를 내던 서방 세계는 되레 미국 편에 섰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끝내 국제 정보기술(IT) 분업을 흔들고, 지역 공동안보 체제에 균열을 낼 정도로 파장이 커진다면 미국 등 국제 사회는 갈등의 도화선이 된 징용기업 피해보상 건과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해자 입장이었던 이들이 피해국인 한국 법원의 판결을 존중할까.

중국의 갈등관리는 배울 가치가 있다. 중국은 관영 언론을 통해 내부적으로 미국 비난을 서슴지 않았지만, 정작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일관되게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미국이 단계적 관세보복과 함께 첨단연구 분야 교류 차단, 대만 교류 강화, 중국 기업 제재 등으로 전선을 넓혀왔지만 중국의 맞대응은 주로 관세보복에 그쳤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66%쯤 된다(명목 달러 기준). 체급 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최대한 확전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일본 기술과 소재 부품이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부품 소재 국산화는 대일 무역역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수십 년 단골 처방이다. 정부 의지만으로 해결될 과제라면 중국은 이미 부품 소재 강국이 됐을 것이다.

징용기업 배상문제가 이번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됐지만, 사실 일본 식민통치에 우리보다 더 이를 갈 만한 나라는 중국이다. 지금도 영유권 분쟁 중이고,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일본을 전초기지로 쓰고 있는 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도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과 기술 교류 강화에 공을 들인다. ‘제조 분야의 완전한 독립’을 이뤄 수평적인 분업에 나서는 날이 진정 식민 지배를 청산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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