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韓경제, 7대 위기징후…"네 탓 내 탓 할때 아냐"
경제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올 1분기 성장률은 작년 4분기 대비 -0.4%로 추락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나쁘다. 이른바 ‘일곱 가지 위기 징후군’이 재연되고 있다.

첫째, ‘마냐냐(manana) 경제관’이다. 마냐냐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다. ‘내일은 또 태양이 뜬다’는 식으로 경제정책 결정 및 집행자의 경제관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졌는데도 2분기 이후에는 나아진다고 내다봤다. 외환위기 당시 ‘펀더멘털론(위기는 닥치는데 경제는 괜찮다는 주장)’을 연상케 한다.

경제 현안을 풀어가는 데는 정확한 경기 인식부터 선행돼야 한다. 너무 낙관적으로 보면 정책 실기에 이어 땜질식 처방만 남발한다. 작년 4월부터 경기 침체 우려가 나왔는데도 “올해(당시 내년)부터 본격 회복된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장하성 전임자(현 주중 대사)와 달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나마 경제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희망을 걸어본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韓경제, 7대 위기징후…"네 탓 내 탓 할때 아냐"
둘째, 경제정책이 ‘코브라 역설(cobra paradox)’에 빠진 것도 가슴 아프다. 과거 영국 정부가 인도 식민지에서 골치 아픈 코브라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으나 오히려 숫자가 더 늘어난 정책 실패를 일컫는 말이다. 미봉책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용된다. 경제정책의 성공 열쇠는 ‘타이밍과 고통 분담’ 여부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정치적 포퓰리즘에 휘둘려 정책 시기를 다 놓치고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정부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다.

셋째, ‘새로운 너트크래커(new nut-cracker)’ 국면에 빠진 것도 우리가 당면한 현안이다. 너트크래커는 1990년대 ‘저임’의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에 낀 한국 수출 상품 위상을 꼬집은 말이었다. 새로운 너트크래커는 ‘무역 마찰’에서 ‘첨단기술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싸움 속에 낀 한국을 말한다.

넷째, 동일 선상에서 ‘삶은 개구리 징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빠지고 있는 것도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한다. 가장 싫어하는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살고, 천천히 온도를 올린 물에 넣은 개구리는 죽었다는 미국 코넬대의 비커 실험에서 유래한 용어다. 환경 변화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된다. 3년 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제시된 4차 산업혁명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주도 업종은 성수기까지 도달하는 데 3년밖에 안 걸리고 선도자에게 모든 이익이 집중된다. 미국(AMP·advanced manufacturing partnership), 독일과 중국(industry 4.0), 일본(recovery)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다섯째, 부동산 대책의 본질을 잘 지적한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도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전략가인 스리 쿠르마는 “서울 강남 아파트에 거품이 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사 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매수세가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1993년 이후 서울 아파트를 집중 연구해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강남 불패론’과 같은 시각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목표 아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왔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강남 지역에 대해선 마치 본때를 보이듯 ‘동원 가능한 수단은 모두 동원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큼 대책을 집중시켰다. 투기의 본질인 기대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경착륙’보다 ‘연착륙’ 대책이 더 효과적이다.

여섯째, 경제 주체의 위기 인식과 관련해 두 가지 경고도 눈에 띈다. 하나는 제임스 버크의 명저에서 유래한 ‘핀볼 효과’다. 볼링 핀에 비유해 위기 징후는 도미노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징후라도 무시하다 보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든다는 경고다.

일곱째,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무각통증(disregard)’이다.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 따라 경제입법을 미루고 있고 노조는 소속 기업이 망해도 거리로 뛰쳐나오기 일쑤다. 있는 계층 사이엔 위기가 닥쳐도 ‘나는 괜찮겠지’라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네 탓 내 탓 할 때가 아니다. 모든 주체가 경제 살리기에 나서 ‘7대 위기 징후군’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