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악재도 버거운 판국에 나라 안에서마저 온통 투쟁과 갈등 일색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겹쳐 앞날이 예측불허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을 고집해 갈등비용을 키우고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활력 회복에 안간힘을 쓰지만 일방통행식 공약 질주를 멈추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인천공항공사로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것부터 그렇다. 애초에 정규직 과보호를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비정규직은 ‘희망고문’에 울고 공기업의 재정 악화, 기존 정규직과의 갈등, 더 좁아진 청년 취업문 등 후유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으니 노동계 요구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어제 민노총 소속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가고 전국 2800여 개 학교 급식이 중단된 게 그런 사례다. 환경미화원, 수도검침원, 톨게이트 수납원 등이 속한 민주일반연맹도 파업에 참여해 파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한국노총 소속 우정노조도 파업이 임박해 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두고두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 2년간 약 30%를 올렸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주휴수당까지 감안하면 이미 시급 1만원을 넘었는데도 노동계는 주문 외우듯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고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비명에 놀란 정부·여당 일각에서 동결론이 나오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약의 덫’에서 헤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가정 균형’을 명분으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강행했지만 이에 따른 유·무형의 산업경쟁력 저하는 가늠조차 어렵다. 세계가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전쟁을 벌이는데 한국 기업들은 오후 6시면 컴퓨터를 꺼야 한다. R&D실도, 신제품 개발실도 예외가 없다. 이를 어기면 서슬 퍼런 처벌이 기다릴 뿐, 기업들이 호소해온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등 보완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러면서 무슨 혁신성장을 도모하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국내 기술역량을 키운다는 것인가.

과학이 배제된 탈(脫)원전 공약은 관련 산업 생태계 붕괴, 인재 유출, 수출 차질, 한국전력 대규모 적자에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번지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 확대(일명 ‘문재인 케어’)도 정부는 국민 의료비를 경감했다고 생색을 내지만, 그 이면에는 건보 적자와 가파른 건보료 인상이 숨어 있다.

선거 때는 ‘듣기 좋은 소리’(공약)가 필요할지 몰라도 ‘현실에서의 운용’(정책)은 분명 달라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양면성이 있고, 예기치 못한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뒷감당도 못할 선거공약들이 마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가다가 잘못된 길임을 알고도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정운영에서 약속 이행보다 더 중요한 게 책임지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