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공지능(AI) 부문의 리더가 될 수 있는가.’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지난해 9월 이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한국은 인재가 부족해 중국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할 때마다 데이터 활용 제약 등 신산업 규제가 많이 거론되지만, 설사 규제가 풀리더라도 인재를 구할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서울대 컴퓨터공학 정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55명 그대로다. 그 사이 미국 스탠퍼드대는 141명(2008년)에서 739명(2018년)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서울대에 KAIST(160명) 고려대(115명) 연세대(66명) 포스텍(25명)의 컴퓨터공학 정원을 다 합쳐도 스탠퍼드대 한 곳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IT 인재 부족을 절감하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해외로 돌아다니거나 직접 양성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클라우드, 가상·증강현실(VR·AR), 빅데이터 등의 분야에서 2022년까지 개발자 3만1833명(석·박사급 1만9180명 포함)이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전망이 나오면 미국 대학들은 관련 인원을 늘리는 등 변화에 먼저 대응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일본에서도 산업계가 AI 인재 부족을 호소하자 정부가 AI교육 개혁을 들고나왔다. 초·중등학교는 물론이고 전체 대학과 대학원을 대상으로 AI교육 강화전략을 꺼내든 것이다. 우리는 딴판이다. 정부도 대학도 ‘내 알 바 아니다’는 식이다.

정부의 정원 통제, 경직된 대학 학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국립대 사립대 할 것 없이 기득권에 안주해 변화를 거부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서울대의 ‘반도체 계약학과’ 무산만 해도 대학이 얼마나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변화를 거부하면 도태당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IT기업들은 공장 연구소 등의 입지 선정단계부터 인재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시장 수요를 외면하는 국내 대학들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