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국토부의 이상한 셈법
“서울 아파트 공급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토교통부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장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2017년 6월 취임식에서 “(집값) 과열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있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 집값 상승은 다주택자들이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면서 발생한 투기 수요에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서울 공급 충분론’은 최근 김 장관이 ‘분양가상한제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는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공공택지에 실시 중인 분양가상한제를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택지에도 적용하면 공급이 위축돼 집값이 오르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김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올해 서울에서 아파트 4만4000가구가 공급되기 때문에 공급이 위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집값 상승은 다주택자 투기 탓"

김 장관이 제시한 수치는 국토부가 지난달 중순에 내놓은 ‘보도참고자료’를 근거로 한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22년까지 서울 아파트 공급 물량(준공 기준)은 연평균 4만3000가구에 이른다. 이전 10년(2008~2017년) 평균 3만3000가구 대비 약 32.1% 증가한 것이어서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 수치’로 보면 공급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교시점에 따른 착시가 적지 않다. 국토부가 비교한 이전 10년은 노무현 정부의 전방위적인 수요억제 정책의 부작용이 가시화된 시기인 데다 글로벌 경제위기,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맞물려 주택 공급이 이례적으로 급감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평균치에 비해 44.9%나 적었다.

공급이 일시적으로 늘어난다 해도 서울의 만성적인 집 부족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 재고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를 보면 서울은 366.1가구(2017년)에 불과하다. 뉴욕(412.4가구), 런던(410.8가구), 파리(605.7가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인구 1000명당 적정 가구수는 450가구 안팎이다. 세계 최고의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도쿄(579.1가구)와 비교해도 서울은 앞으로 꾸준히 공급을 늘려야 할 상황이다.

2023년부터 '공급절벽' 우려

‘규제 시차’ 효과도 따져봐야 할 주요 변수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사업시행인가에서 입주까지 5년 정도 걸린다. 국토부가 증가한다고 내세운 2022년까지 서울 공급 물량은 이전 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의 결과다. 이 효과가 끝나고 문재인 정부의 ‘수요억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2023년부터는 ‘공급절벽’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서울의 주택 수요는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하니 새 아파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요자들의 인기가 집중되는 지은 지 5년 이내 아파트 비중은 2005년 23.1%에서 2017년 9.2%로 떨어졌다.

서울 중구, 용산구, 종로구 등 구도심 일대에선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주택이 62.2~72.6%에 달한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도 10가구 중 4가구 정도가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신규 아파트 3.3㎡당 분양가가 5000만원에 육박하는데도 청약경쟁률이 최고 수백 대 1에 달하는 것은 ‘새집 희소성’을 빼면 설명할 길이 없다.

‘냉·온탕 정책’의 부작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국토부가 현실을 외면하고 “그래도 공급이 달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셈법’을 고집하는 한 집값 안정은 요원해질 것이다.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