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한민국 기업인이라는 극한직업
“이제까지 이런 기업 환경은 없었다. 이것은 공산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최근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재산을 정리 중인 한 중견 기업인이 저녁 자리에서 뱉어낸 말이다. 뭐가 가장 힘드냐고 물었더니 “가혹한 세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십 년간 열심히 장사해서 번 돈에 대해서는 또박또박 20% 남짓 법인세를 냈고, 배당으로 손에 넣은 돈에 대해서는 40% 넘는 개인소득세를 냈는데, 가업승계 시에 또 65%의 증여세를 내야 하니 도대체 이렇게 약탈적인 세금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국세청 세무조사 두 번, 노조 고발에 노동청 출두 조사를 두 번 당했는데 그나마 검찰에는 안 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느냐는 푸념이었다. 그동안 그런 줄 모르고 사업을 했냐고 하니 세금 많이 내고 고용 많이 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나라에만 좋은 일 한 셈인데 고맙다는 소리 한 번 못 들었다며 “기업하기 참 힘들다”고 넌더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 분은 그래도 행복한 경우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분들은 세금 낼 기회도 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경기침체, 버거운 임금, 악질적 노조, 싸구려 중국 제품 등을 원망하며 폐업했을 것이고, 높은 세금에 불평하는 신세마저 부러워했을지 모른다.

대기업의 경우는 좀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국내 시장을 주름잡고 있고, 일부는 국가대표로서 세계적인 회사들과 경쟁한다. 대개 창업주의 2, 3세가 상속·증여를 통해 ‘오너’ 일가를 이루고 있고,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또는 대규모 기업집단으로서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회사들이 처한 기업환경은 어떤가?

우선, 대기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해외에서 삼성, LG, 현대자동차 제품을 보고 가슴 뿌듯해하기도 하지만 불법 상속, 일감 몰아주기, 갑질, 황제경영 같은 나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은 대기업을 규제와 질타의 대상으로 보고, 언론은 대기업과 기업인의 잘못을 들춰내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반(反)기업적인 법과 제도다. 세계 최강급 민주노총의 위력에 더해 친노동적인 정부 정책으로 고용과 임금 결정의 주도권은 이미 노동계로 넘어갔다. 기업의 목숨과도 같은 생산요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 기업활동에 큰 부담을 주는 법안이 일방적으로 시행되면서 기업 대표들은 한편으로는 비용 걱정에, 또 한편으로는 구속 걱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민단체의 공격 또한 기업을 힘들게 하는 일 중 하나다. 환경, 인권, 사회정의 같은 고상한 주제를 앞세워 기업이 당장은 감당하기 힘든 요구를 쏟아내고, 기업의 대응이 맘에 들지 않으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기업 사옥 앞에서 실력 행사를 일삼는다. 정부는 도움은커녕 대기업에 대한 적의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노동계와 시민단체 편을 들고 있다. 국회의 경우,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기업인을 매섭게 질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이런 적대적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을 위한 방어라면, 시장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공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사들보다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더 싸게, 더 빨리 만들어 내야 한다. 기존 사업의 전망이 불투명하면 신규 사업을 벌여야 하고, 국내 시장이 비좁으면 해외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실상 자신의 건강 빼고는 모든 것을 챙기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왜 이런 극한직업을 우리 기업인들은 갖고 있을까? 사람들에게 직업이란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 운명이 너무 가혹하면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기업인 또한 기업경영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기업환경이 지나치게 엄혹하면 기업인들도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극한직업들은 대개 힘은 들어도 보람이 있는 일을 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대한민국 기업인이라는 극한직업은 폐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갈림길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