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하이에크와 케인스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20세기 경제사상을 대표하는 두 학자는 불황의 원인 진단과 해법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케인스는 불황이 유효수요 부족으로 발생한다고 봤다. 따라서 정부가 돈을 풀어 수요를 창출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신용의 과잉 팽창이 불황을 가져온다고 진단했다. 고통스럽지만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는 과정을 거쳐야 불황이 끝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두 학자 간 논쟁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대대적인 정부 개입을 골자로 한 ‘뉴딜 정책’을 펴 케인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1970년대 세계를 강타한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계기로 하이에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대표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불리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 대처리즘의 배경이 된 것도 시장개입 최소화와 감세로 대표되는 하이에크 이론이었다.

힘을 잃은 케인지언들은 1990년대 초 공산권 몰락으로 사회주의 이념의 비현실성까지 드러나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 영국 노동당 정부 시절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주창한 ‘제3의 길’과 빌 클린턴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이 그런 것이었다. 정부의 ‘크기’보다는 ‘효율’을 강조하는 실용적 노선을 택하는 식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케인지언들에게 모처럼의 반격 기회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시장 실패’ 때문인지, ‘정부 실패’ 때문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양적완화와 초저금리가 글로벌 불균형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케인스뿐 아니라 하이에크의 원서도 읽었다”며 “환경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정책의 유연성도 강조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뿌리가 케인스식 개입주의에 닿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모두 죽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식으로 반문하는 케인스식 처방은 정치인이나 당국자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고통을 참으라는 얘기보다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의 책을 통해서도 감동받았다”는 김 실장이 얼마나 균형 잡힌 정책을 펼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