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시 양적완화 고려해야
부작용 있지만 금리 낮다 보니
유동성 공급외 마땅한 대안 없어"

배리 아이컨그린 < 美 UC버클리 교수 >
[해외논단] 양적완화보다 좋은 카드는 없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거북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멈춰 있다. 이렇게 어색한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가 날로 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에선 물가상승률이 계속 공식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저축과 투자, 고용상황이 균형 상태를 이뤘을 때 금리인 ‘자연 이자율’도 수년간 하락세다.

미국 자연 이자율 추정치는 현재 연 2.25~2.5% 수준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금리 수준과 같다. Fed가 물가상승률 목표치와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금리를 조정할 여지가 적다는 얘기다. 유럽 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현 가능한 금리 수준에 한계가 있다 보니 다음 경기 침체가 올 경우 중앙은행은 금리를 더 낮추기 힘들다. 일부 국가 중앙은행에선 ‘마이너스 이자율’을 도입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사후 결과를 볼 때 마이너스 이자율이 일반 은행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은행 시스템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리스크 회피적인 각국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이자율 실험’에 또 나서길 꺼리는 이유다.

그러므로 다음 경기 침체가 온다면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4차 양적완화(QE4)’다. 예전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비판해온 이들은 QE4를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직접 주입하는 것은 자신의 고유 임무를 넘어선 일이라고 비판한다. 중앙은행이 모기지 담보 채권이나 회사채를 구입하면서 금융 시장이 왜곡된다는 주장이다.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유동성을 많이 풀면 수익률 곡선이 왜곡된다. 중앙은행이 사들인 채권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앙은행의 자본 손실 위험도 늘어난다.

양적완화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각국 정치권은 중앙은행이 시장 유동성을 대규모로 늘릴 때 의회 등의 정책적 감독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공격과 간섭이 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됐다.

하지만 양적완화 정책을 반대하는 이들은 대안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각국 경제를 쇠약하게 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이 도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양적완화 비판론자들이 어떤 주장을 했을까. 아마 통화 정책 입안자들이 주요한 시기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유럽 등에선 양적완화가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와 포퓰리즘 정책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자율이 높으면 정부가 적자 재정지출을 결정하기 전에 한 번 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최후의 수단’이라며 정부 채권을 제한 없이 매입한다면 이자율이 시장 규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예산 제약을 무시하고 재정 지출을 늘리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나 인플레이션 등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양적완화를 피한다고 해서 포퓰리즘적 정치인이 득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이 다음 경기 침체기에 양적완화를 회피한다면 결과적으로 생산량 감소는 더 심해질 것이다.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은 그 기회를 잡아 주류 정책입안자들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선거 운동에 열을 올릴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정부 우두머리를 많이 차지할수록 재정 적자는 늘어난다. 양적완화 정책을 안 썼을 때 불안정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진다는 얘기다.

양적완화 정책 비판자들이 양적완화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하는 데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양적완화 정책을 선택지에서 배제했을 경우의 부작용도 크다. 경기 침체기가 왔을 때 양적완화 정책을 고려해볼 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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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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