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일본 금융청이 “65세 이상 부부의 노후자금이 최대 2000만엔(약 2억1618만원)가량 부족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일본 사회에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에선 2007년 1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붕괴의 계기가 됐던 ‘사라진 연금’ 사건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日, 노후자금 불안 확산…아베 '정권 붕괴 악몽'에 떤다
지난 3일 금융청은 보고서를 통해 65세 이상 남성과 60세 이상 여성으로 구성된 부부가 연금에만 의존하는 생활을 한다고 가정하면 매월 5만4520엔(약 58만원)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은퇴 이후 삶이 20년간 지속될 경우 부족한 노후자금 규모는 1300만엔(약 1억4042만원)에 이르고, 은퇴 기간이 30년에 달해 남성 수명이 95세에 이를 때에는 부족한 자금이 2000만엔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현역 시절 △퇴직 전후기 △고령기 등 3개 연령대로 나눠 미리부터 보유자산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등 스스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60세 남성의 25%가량이 95세까지 살 것이란 추정이 나오는 일본에선 이 같은 보고서가 전 국민적인 노후 불안 공포로 이어졌다. 이데 신고 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어려서부터 ‘돈이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재테크 준비를 하지 않았던 노령층 일반인들에겐 충격적인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청 보고서가 나온 이후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등 일본 야권은 정부가 연금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연금만으로 노후자금이 보장되도록 하겠다던 아베 정권 주요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는 “금융청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격노했고, 일본 정부는 “금융청 보고서가 오해를 가져왔다”며 정식 보고서로 접수하지 않겠다는 이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이 일본 고령자 생활실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0일 NHK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만 사는 가구의 퇴직금을 제외한 연간 평균소득은 2017년 현재 318만엔(약 3438만원)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이 해 평균 공적연금 수령액은 211만엔(약 2281만원)이었으며 고령자 가구 중 52%는 공적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향후 공적연금에 주로 의존한 노령층 연간 수입을 251만엔(약 2711만원)으로 추정한 금융청 보고서 추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할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집권 자민당 내에선 내달 열릴 참의원 선거에서 금융청 보고서 파문이 제2의 ‘사라진 연금’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07년 일본 정부가 연금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5000만 명분의 연금 기록 중 일부가 누락된 것이 드러나면서 아베 정권은 총선에서 패해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