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 논설위원
[천자 칼럼] 힘내라, 홍콩!

중국 광둥성 남단, 주장(珠江) 하구에 있는 홍콩(Hong Kong)은 면적이 서울의 약 1.82배(1104㎢)다. 주룽반도와 홍콩섬, 256개 주변 섬으로 구성된 이곳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다. 제1차 아편전쟁으로 1842년 영국에 할양됐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양국협약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의 두 가지 정치체제)’를 적용받는다.

홍콩이 아시아 금융·물류 허브이자 쇼핑 중심도시로 부상한 시기는 1950년대다. 번영의 주역들은 1949년, 공산화된 중국대륙에서 넘어온 난민들이었다. 상하이와 난징 등 주요 대도시에 거주하던 자본가, 지식인, 기술자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들은 법치주의, 의회민주주의, 작은 정부 등 영국식 법과 제도를 적극 활용해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홍콩은 아시아 문화를 전파하는 선구자였다. 일류(日流·일본 문화)와 한류(韓流·한국 문화)가 성행하기 훨씬 이전에 홍콩 영화와 음악이 세계에서 인기를 모았다. 홍콩의 경제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 마천루가 연출하는 화려한 야간 조명 등은 6·25전쟁으로 피폐한 한국에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젠 옛말이 됐지만 ‘황홀한 경험’을 뜻하는 ‘홍콩간다’는 말이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홍콩아가씨’(1954년) 등 홍콩의 정취를 노래하는 대중가요가 유행하기도 했다.

홍콩은 150여 년 동안 영국 통치를 받은 까닭에 대륙(중국)과 정서적 문화적 차이가 적지 않다.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에 익숙한 홍콩인들은 ‘감시사회’인 공산주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으로 촉발된 최근의 144만 명 홍콩 시위에는 이런 점이 상당부분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홍콩 시위의 이면에는 중국이 홍콩인들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반(反)시진핑 서점 5인 실종 사건’으로 대변되는 점점 줄어드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불안감이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홍콩인들은 이번이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란 절박감으로 일어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시를 받는 홍콩정부가 ‘범죄인 인도법’ 잠정 중단을 선언했지만 홍콩인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치적 자유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는 한 미봉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자유와 인권은 문명국가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 홍콩인들의 봉기에 미국 등 각국의 지지가 잇따르고 있는 이유다. “홍콩(Hong Kong), 자유(加油·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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