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태스크포스(TF)가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논의 중인 가운데 전기 사용량이 소득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감사원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이 올초 서울대 전력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소득보다는 가구원 수가 전력 사용량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가장 싼 요금을 내는 1단계(월 사용량 200㎾h 이하) 가구 중 저소득층(2017년 기준 월평균 소득 150만5000원 이하) 비중은 18.5%에 불과했다. 반면 가장 비싼 요금을 내는 3단계(월 401㎾h 초과) 가구 중 저소득층 비중이 7.2%나 됐다. 4인 이상 가구가 과반(58.1%)을 차지했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전력 저소비층=저소득층’이라는 누진제의 전제를 흔드는 결과다.

누진제 폐지보다는 한시적 구간 확대나 누진단계 축소(3단계→2단계) 쪽으로 기울었던 정부의 고민이 커지게 생겼다. 누진제를 유지하자니 근거가 궁해졌고, 폐지하자니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전력 저소비층(1416만 가구)의 전기료는 월평균 4335원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여름철 ‘요금 폭탄’을 덜어줄 생색내기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1인당 전기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1.3배에 달한다. 전기 과소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기요금 인하는 그렇지 않아도 탈(脫)원전 정책으로 늪에 빠진 한국전력에 또 다른 손실을 떠안긴다는 문제도 있다. 1인 가구 확대 등으로 누진제의 근거가 희박해진 이상 누진제 개편이 아닌, 폐지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요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저소득층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통해 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정부는 전기요금 체계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